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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국 경민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전 경민대 도서관장) · 법학박사 ⓒ 교차로저널 | ||
몇일 전 정00 선생님(전 고교 교사, 예비역 해병대위, 필자의 군동기생)으로부터 동요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동요 ‘오빠 생각’은 1925년 11월 경기도 수원의 12살 최순애 소녀가 방정환이 내던 잡지『어린이』동시란에 입선한 작품이고, ‘고향의 봄’은 1926년 4월 경남 마산의 14살 이원수 소년이 같은 잡지에 입선한 작품이다. 초등학생들이 쓴 작품이란 점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순애와 이원수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사귀다가 1936년 6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필자(筆者, 월남전참전, 예비역 해병대위)는 이 동요가 초등학생의 작사라는 사실에 놀랐고, 두뇌의 명석함은 타고나야 한다는 사실을 또한 번 실감했다.
‘고향의 봄’ 하면 필자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이 달 6월은 6⦁25 사변이 일어난 지 66년이 되는 해이고, 필자(고골초교 제1회 졸업생)가 고골초등학교(하남시 춘궁동) 3학년 때였다. 신설학교 이므로 선배는 없고, 남자 선생님뿐이던 학교에 4학년 때 여자선생님(장석운)이 처음 부임하셨다.
그 선생님이 우리 동네(궁안) ‘궁집’(왕손의 집이라 궁집이라 부름 -한옥 99칸 집)에 방을 빌려서 거주 하셨다. 그 당시 농촌에는 방을 세를 놓는다는 용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빌려주면 무상(無償)으로 빌려주는 것이 풍습이었다.
어느 날 우리 큰 누나가 저녁에 그 장선생님댁에 말(=마을 : 시골서 이웃집에 놀러가는 일)을 가서 선생님과 환담하면서 “조성국이가 제 동생입니다.”라고 하였단다. 그러자 장선생님이 “조성국 학생을 다음 학예회 때 내 보낼께요”라고 하셨다고, 누나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후 가을 학예회에 즈음, 장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풍금을 치면서 ‘고향의 봄’을 부르라고 하여 연습을 시켰고, 또 한 곡은 ‘누나’였다.
몇일 후, 학예회에 나가 나는 독창으로 ‘고향의 봄’과 ‘누나’ 두 곡을 불렀다. 그 다음부터 5~ 6학년까지 학예회 때 마다 나갔다. 그런데 6학년 때 문제가 생겼다. 선생님이 학예회 때, 반장이었던 안상환(작고)은 지게를 지고, 나는 낫을 들고 ‘농부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매스컴이 발달하고, 방송 연예활동도 다양, 개그콘서트도 생겨 TV 수상기(受像機)로 시청하는 등 여흥프로가 보편화 되었지만, 그때는 농촌에 라디오 수신기(受信機)도 없던 농경시대(農耕時代)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이므로 춤을 춘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몇일 간 연습을 하다가 안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춤 담당선생님으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었고, 그래서 나는 “집에서 하지 말라고 하신다”고 핑계를 대면서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이 프로는 꼭 해야 되는 것 같았다. 그 선생님이 우리 담임선생님께 말씀하셔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담임선생님(유성순)은 “너의 집에서 학교에서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니?” 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대답을 못 했다. 사실 담임선생님의 질문은 “학교교육에 대해 학부모가 간섭하느냐!”는 뜻이 내포 되어 있던 것이었다. 훗날 생각하니 정말 내가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대학 강단에서 약 30년 강의를 하고 생각하니, 학교교육에 학부모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담임선생님께서 “너의 집에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네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지?” 라고 말씀하셔서 “녜 그렇습니다.”고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그냥 해라!”라고 하셔서 학예회에 나가 춤을 추었다.
그 ‘춤사위’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또한 동요 ‘고향의 봄’과 ‘누나’도. 따라서 나는 ‘학예회’라는 말이 나오면 ‘고향의 봄’과 ‘누나’가 생각난다.
학예회에 참가한 후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필자의 세대는 서독 광부ㆍ간호사⦁월남전 참전용사 및 월남 기술자 세대로 바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세대다.
우리가 해외에서 번 돈을 본국에 송금, 이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및 각종 건설과 산업을 발전시킨 결과,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300년 걸려 이룩한 경제발전을 단 40년 만에 달성, 가난의 상징인 “보릿고개”를 거뜬히 넘어 세계경제 10위권 국가를 만든 기적을 이루었다.
생각할수록 감개무량하다. 이 기적의 원천은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따금씩 언론보도로는 학교와 학부모 간에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가 있다.
‘교육은 100년 대계’이고,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각 학교 당국 및 담당 선생님들이 신중히 커리큘럼(Curriculum)을 짜서 성실히 진행하는 것이므로 학부모들이 간섭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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