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초월읍 신월리 512-2번지 파란만장한 인생에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주)대창기업 서덕훈 대표의 사업장이다.
사업장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만난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는 서 대표였다. 그냥 직원인줄만 알았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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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창기업 서덕훈 대표 | ||
(주)대창기업은 1983년 서울시 성수동에서 가로등 기구 금형 공장으로 처음 시작했다. 당시 가로등 기구 금형을 제작했던 서 대표는 거래처로부터 새로운 제품의 샘플을 의뢰 받았다.
하지만 서 대표에게는 그것이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없이 지안에게 샘플을 주었던 것이 거래처로부터 '아이템 유출'이라는 통보를 받고 곧 회사 문을 닫았다.
이후 서 대표는 대문 수리공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오다 양주병 마개 모조품을 만들어 달라는 유혹을 받았다. 불법인 것을 인지한 서 대표는 준비했던 장비를 가지고 뷔페식당 식기를 만드는 공장을 소규모로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식기제조 사업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바이어로부터 이태리 수입품 식기를 입수해 한국형으로 개발해 납품을 하려고 하자 이번엔 제작 단가가 너무 터무니없이 맞지를 않았다.
서 대표는 그 당시를 "시중가가 약 8만원 정도 했는데 거래처에서는 3만원에 매입하려고 하더라 내가 아무리 만들어 내도 남는게 없더라"며 회상했다.
하지만 식기 제작사업이 오늘의 (주)대창기업의 발판이 됐다. 가로등 기구 제작 사업을 다시 시작한 서 대표는 2001년 12월 현 공장부지로 이전하고 본격적인 제2의 기업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 1위, 2위를 다투는 견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국의 어두운 도로와 따듯한 마음의 등불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미국에 수출길도 열었다. 직원들도 어려운 시기를 위해 밤낮없이 생산에 전념하고 있다. 서 대표는 "항상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신앙인으로 믿음을 가지고 기업을 이끌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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