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 가지있어 장지라 이름 지어져
![]() |
||
| #통장협의회장, 한건수 | ||
담안(장내)의 '장'자와 앞가지의 '지'자를 한글자씩 따 장지리라고 하게된 것.
담안(牆內)이란 뜻은 주위에 있는 산이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다 해 명칭됐다.
또, 장지리 1리에서 2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두가지가 뻗어있는 큰 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 두가지 중에 앞가지가 뻗어있는 방향의 마을을 '앞가지'라고 부르고 가지가 뒷쪽으로 뻗어있는 마을을 '뒷가지'라 부르게 됐다.
이러한 마을명의 유래와 함께 장지동의 옛 선인들은 마을을 '절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건수 회장은 고려시대에 장지리 3리에 큰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가정의 화목을 비는 곳이어서 마을 주민들의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
그래서 큰 절이 있는 동네라 해 마을이름을 '절골'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 절이 불에타 흔적이 없어진데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행정구역이 바뀌어 지금의 이름을 갖게됐다.
장지동의 지난 1950~70년대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당시 30여호에 불과한 마을은 거의 모든 집에서 공무원을 배출했던 것.
한건수 회장은 마을 청년들이 머리가 좋아 똑똑했던 모양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어찌됐건 마을의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선 1명에서 많게는 3명까지 공무원을 배출했다.
그들 대부분이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현재도 광주시와 하남시 등에서 고위공무원이나 시의회 의원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토박이들의 이러한 이야기거리가 있은 후 몇십년이 지난 지금은 약 460세대에 1천여명이 거주하는 도심동네로 바뀌었다.
논과 밭이었던 마을은 빌라와 주택으로 바뀌어가 지금은 농사를 짖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주거형태로 변했다.
한건수 회장은 "계획 개발이 돼 장지동이 살기 좋은 동네로 변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을 주민 전체가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현재 거주하는 마을 주민 중 90% 정도는 외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라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도 많다.
하지만 정(情)은 그대로 남아 사건사고가 거의 없는 평화로운 마을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 |
||
| #장지동 전경 | ||
마을 한편에 있는 공동묘지를 정비 해 왕릉형 추모공원을 조성하고 있어 이 계획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것.
한건수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오래된 공동묘지가 정비되는 것을 바라고는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마을 주민들 모두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결정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