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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이강(李剛)선생”하남 사는 며누리 황춘자씨의 지난 이야기
   
 
  ▲ 1964년 10월 13일. 이강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사진은 서울 시청앞에 차려진 장례식장의 모습  
 
   
 
  ▲ 1964년 10월 13일. 이강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사진은 서울 시청앞에 차려진 장례식장의 모습  
 

 

미국서는 도산 안창호선생과 ‘공립신문’ 창간 후 주필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역임, 광복회 초대 회장도

   
▲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안필립씨의 방문을 받고 기념촬영한 생전의 이강 선생 모습(가운데가 이강 선생, 우측이 안필립씨)


올 해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로, 국가보훈처는  2005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선정했다.

도산 선생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했으며, 미국에서는 ‘공립신문’의 주필로 활동 했으며, 러시아에서는 ‘해조신문’ ‘대동공보’를 창간하여 편집.논설기자로 활동 하면서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일제의 조선 강제합병에 대해서 수 많은 글을 남겼었다.

2004년도 4월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되기도 했던 오산(五山) 이강(李剛)선생의 자부(子婦)를 만나 이강선생의 흔적을 살펴 보았다.

이강(李剛)선생의 자부(子婦)인 황춘자씨(여.73)는 하남시 신장동 에코타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강선생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편집자 주>

 

▶이강 선생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언제 인가요?

시아버지인 이강 선생을 처음 뵙게 된 것은 6.25전쟁중인 1952년, 피난 가 있던 대구에서였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친정 아버지는 오사까 전문대를 나와서 신의주 도청 토목공무원 생활을 하셨는데, 조심스럽게 하셨지만 평소에 민족운동을 하는 분 들과 많은 내왕이 있었다.

그러한 관계로 백범 김구 선생과도 교분이 있었는데, 주위 친척의 소개로 당시 나이 22살 때 처음, 시아버지가 될 이강 선생을 뵙게 됐고 외아들과 곧 바로 결혼 한 후, 1964년 10월 별세 하실 때 까지 13년간을 곁에서 모시고 살았었다.

   
▲ 1964년 10월 13일. 이강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사진은 서울 시청앞에 차려진 장례식장의 모습


▶이강 선생은 어떤 분 인가?

1878년 평남 용강에서 출생하신 선생은 한학을 10년간 하던 중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1903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1904년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미주 한인동포의 상호 부조와 공생공립을 위해 공립협회를 창설하고 ‘공립신문’을 창간하여 주필로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귀국하여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키로 마음먹고 1907년 귀국하여 안차호, 양기탁등과 비밀 결사로 구 한말 최대의 국권회복운동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러시아로 건너가 블라디보스톡에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1909년 미국의 공립협회가 ‘대한인국민회’로 확대 개편되자, 여기에 호응하여 연해주에서 정재관등과 함께 ‘재러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각 지방 지회를 설치했다.

나아가 ‘해조신문’과 ‘대동공보’를 창간하여 편집.논설기자로 활약하며 민족의 독립의식을 고취 하였다.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에는 일제의 압력이 거세져서 ‘대동공보’가 정간되자 시베리아 치타로 거쳐를 옮겨서 ‘대한인정교보’를 발행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 1964년 10월 13일. 이강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사진은 서울 시청앞에 차려진 장례식장의 모습

●이강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깊숙이 관여하셨다는데?

이 당시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을 와 있는 상태였는데, 어느 날 이강 선생이안중근 의사를 만났는데. 한일합방의 주역을 맡았던 조선총독부 초대 총감 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온다는 말을 하자,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는 내 것 이다(내가 처치한다)”고 말했다고 시아버지는 내게 들려 줬다.

안중근 의사의 뜻을 알고 난 이강 선생은 당시 갑부로 알려진 윤진이라는 분에게 200원을 빌려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하는데 필요한 권총과 고급 의복(남루한 옷을 입으면 하얼빈역에 접근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최고급 천으로 만든 옷)과 여비등을 조달해 줬다.

이토 히로부미의 러시아 일정등에 대한 파악은, 당시 러시아에서 신문을 발행하던 이강 선생이 일반 사람들보다는 정보에 접급 하기 쉬운 점을 활용해서 안중근의사에서 전해 졌던 것이다.

   
▲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과 함께 대화중인 이강 선생의 생전 모습


▶13년간 이강 선생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생활했는데,  선생의 생활방식은 어떠 했는가?

전쟁속에 피난길에서 만났지만 첫 인상은 외국생활을 많이 해서 인지 유럽신사라는 느낌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에 이강 선생은 부산 서대신동의 산꼭대기 집에 살고 계셨는데, 판자집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아침은 빵으로 드시고(미국식) 점심은 밥(한국식), 저녁은 죽(중국식)을 드셨는데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셨으나 아주 적은 양의 식사를 하는 편 이셨다.

24살 때부터 전도사를 했을 정도로 기독교 신앙을 평생 가슴에 안고 생활하셨으며, 저녁식사하면서 가족 기도회를 하면서 하루의 일들을 정리하곤 했다.

서울이 수복되서 남산고등학교 교장도 하시고 흥사단 일과 광복회 초대회장을 맡으셔서 맡은 일을 처리해 나가시기도 했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맡으실 정도로 사회적인 지위가 있으셨고, 8.15해방 이후 3년만에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경제적인 배려를 하려고 했지만, 이북에서 내려온 더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주라면서 거절 하기도 하셨다.

   
▲ 시아버지인 이강선생과 함께 한 사진으로 맨 우측에 있는 여성이 며누리인 황춘자씨 이다.


▶시아버지이기도 한 이강 선생에 대해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무엇인가?

시아버지는 평소에 “나라사랑은 겨레사랑이며 겨레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즉, 영(靈)과 육(肉)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씀 이셨다.

아무리 나이 어린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셨으며, 며누리인 나 에게도 영어공부를 직접 가르쳐 주셨고, 전쟁중인 상태에서도 기술을 배워야 한다면서 양재학원에 보내주실 정도였다.

이때 배운 양재기술로 봉재수출업을 운영하기도 했으니, 시 아버지의 지혜에 늘 감사하고 있다.

한번은 친정에 가 있었는데 시아버지의 편지가 왔었다. 편지에는 “지인이 귀한 파인애플을 가져 왔는데, 너랑 같이 먹기 위해서 대들보 위에 걸어 놓고 있으니 빨리 와라”는 내용 이었다.

전쟁중의 파인애플이니 귀한 음식 이지만, 함께 먹기 위해서 기다린다는 아버님의 글을 읽고 많이 울었었다.

시아버지의 장례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성대히 치러졌는데,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여서 통곡하고 슬퍼 했었다.

   


▶며누리로서 지금 어떤 일 들을 계획하고 있는가?

13년간 이강 선생을 시아버지로 모시고 생활 할 때, 시아버지는 며누리인 내게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지난 시절에 있었던 당신의 흔적과 행적과 생각들을 담담히 들려 주셨는데, 40년 전인 1964년에 유명을 달리 하실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고 보니, 아버님에 대한 행적을 정리 해야 겠다는 뜻을 굳혔다.

지금은 광복회와 보훈처, 각종 도서관,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며, 자료가 확보되면 이를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흩어져 있는 이강 선생의 일대기를 책으로 만들어서 그 분의 뜻과 정신을 남기고 싶다.

또한 광주 이씨이신 시아버지께서 아직 족보에 올라 있지 못한 아픔이 있는데, 종친회측과도 잘 협의를 해서 독립운동가인 시아버지를 족보에 꼭 올리도록 하겠다.

   
▲ 2004년 4월. 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자리에 있는 독립관에서 있었던 <오산 이강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학술강연회의 모습에서 찍은 황춘자씨의 가족사진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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