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 나는 배 생산해 산이리라 이름 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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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배 이장 | ||
맛이 일품이어서 전국에 명성을 얻던 신맛나는 배 생산도 1700~180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면서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재사를 지내지 않는 등 오히려 신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이는 더 강한 박해로 이어지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이러한 시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산이리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들이 형성한 삶의 생업은 항아리였다.
간장이나 된장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에서 부터 각종 찬류를 담는 것까지 생활 항아리가 집중 생산됐고 이는 입소문이 퍼져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데 성공했다.
수도권의 항아리 기술자들이 산이리로 집결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맛 나는 배밭도 생활항아리를 만들 던 곳도 모두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전체 2천5백여 세대 중 1천4백여 세대가 아파트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변화된 산이리를 말해 준다.
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외지로 출퇴근하고 있어 지금의 산이리는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외형은 현대화 됐지만 주민들끼리 사랑을 나누는 전통은 여전하다.
이정배 이장은 "매년 가정의 달에 마을 전체 어르신들께 경로잔치라도 할라치면 주민들은 너나 없이 팔을 걷는다"고 마을을 설명한다.
또, 10여년이 지나 이젠 노후화 된 마을회관을 현대식으로 개축하는데도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고 있다는 것이 이정배 이장의 말이다.
이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마을의 발전을 꾀하고 있지만 풀리지 않는 하나의 아픈 현실이 이 마을엔 있다.
하천변에 늘어선 200~300세대의 무허가 건축물.
그 속에선 각종 생활편의를 제공받지 못하는 주민들이 기거하고 있다.
수돗물 공급이 되지 않는가 하면 하수관로는 오래돼 오히려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어 위생상태가 좋지 않다.
이정배 이장은 "이들 주민들도 우리마을 사람"이라며 "이들이 따듯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각계에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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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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