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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4일에야 새배할 수 있는 마을<마을을 찾아서>광주시 초월읍 대쌍령1리

   
   #  이주동 이장
병자호란시 전사한 수만군 아직도 간직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1리(이장, 이주동)는 조선시대의 한을 품은 아픈 역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광주이씨의 세거지이기도 한 대쌍령리는 마을을 중심으로 큰 고개와 작은 고개가 이어져 있다 해 쌍령이라는 이름을 갖게됐다.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대쌍령과 소쌍령이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3번 국도가 마을 한 복판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좋은데다 마을 앞으로는 곤지암천이 흐르고 뒤로는 백마산 줄기가 뻗어 내려 배산임수형의 그야말로 명당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쌍령리는 그러나 조선시대 인조(1636년) 16년때의 아픈 역사가 사무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남한산성에 피신 해 있던 인조를 보호하기 위해 허완 병마절도사를 비롯 해 조선군 수만군이 남한산성으로 향했으나 도중에 잘 훈련된 청군을 만나 거의 전멸하다시피 패하고 만다.

그 때 장렬히 전사한 허완 장군을 지금의 마을 주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매년 정월 초사흘날 저녁, 마을주민들은 산기슭에 위치한 허완 장군의 묘각과 홍살문이 있는 곳에서 제를 지낸다.

허완 장군을 비롯 병마절도사 민영, 이의배, 안동영장 선세강의 사당에서 갖는 제에는 광주문화원 등 광주시의 지역유지들이 대거 참석하는 규모있는 행사다.

이 제가 초사흘날에 있다보니 쌍령리 주민들은 정월 초하루에 있는 어른들에 대한 새배를 하지 못한다.

우선 선조에게 제를 올린 후 현대 어르신에 대한 예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새배를 정월 초 사일에 한다.

   
이처럼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이 마을의 나라사랑은 남다르다.

이주동 이장은 지난 해 부터 이장수당을 모은 돈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각종 국경일에 태극기 달기 운동이 마을 전체에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대쌍령리의 깊은 역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970년대에 성생된 선린촌 마을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석기 등 유물이 발견되는가 하면, 15~16세기의 조선백자 도요지가 발견돼 사적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 병자호란 당시 아군이 크게 패해 후퇴하던 중 수백명의 아녀자들과 군인이 강물에 투신 했던 낙화암과 부친이 돌아가시자 부친 묘 앞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김태선의 효자비도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이주동 이장은 "효와 조국사랑이 대대로 전해지는 마을이 대쌍령리다"며 "지금은 외지인들이 많이 이주해 왔지만 마을의 전통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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