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맏이가 아니면서도 병환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82세의 노모를 행복한 마음으로 솔선해서 모시고 살아가는 한 공무원의 미담이 있다.
하남시 덕풍1동 사무소 전득순 팀장(여.47)은 경기도 광주가 고향으로 8남매중 6번째인데 위로 오빠가 2분이나 계시지만 어머님 모시는 일에는 나이를 떠나서 가장 앞장 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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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형제중 6번째 자식이지만 진심어린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하남시 덕풍1동 전득순팀장(우측)의 가족사진 | ||
"부모 모시는데 남자와 여자 구분이 있나요?" 전씨의 말이다.
지난 1981년 광주군청에 첫 근무를 시작한 전씨는 어머니와 줄곧 생활을 해 왔다.
형제들이 성장하고 직장과 결혼으로 분가를 해 나갔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어머니도 이 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며누리가 잘 해 준다고 하지만 자식들보다 편 하시겠어요?"
4년전 까지만 해도 전씨는 근무시간이 끝나면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한강변으로 산책을 거의 매일 같이 나갔다.
한강변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이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녀간의 정은 두터웠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한 순간도 일순간에
깨졌다.
4년 전 부터는 노인성치매 현상으로 기억력이 점점 떨어 지더니, 금년 2월에는 다른 형제집을 다녀오던 어머니가 뒤로 넘어 지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변했다.
혼자의 몸으로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를 딸은 온 정성을 다해서 뒷 바라지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어머니를 목욕 시켜 드리고, 어머니가 식사 드시는 것을 보고서 출근을 하다 보면 매일 아침 시간이 빼곡 하지요(웃음)"
빠듯한 박봉이지만 파출부를 채용해서 자신이 돌봐 드리지 못하는 낮 시간 동안에 어머니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했다.
"내 자신도 놀라는 것은 내가 어머니를 정말로 좋아 한다는 것 이예요" "어느 순간 내가 내를 봐도 신통할 정도이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전득순씨는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다른 형제들이 생활비에 보태 쓰라면서 돈을 부쳐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간의 우애와 정도 깊어져 감을 느끼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오래 같이 사셨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전득순씨는 지금의 모습을 사진 찍자는 기자의 요청에 굳이 몇 년전 사진을 고집한다.
"지금은 어머니가 너무 수척해져서 그런 모습이 사진에 나오면 내가 가슴이 아플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옛날 사진은 어머니 얼굴에 살도 찌고 보기 좋지
않나요?"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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