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어려서 가정형편과 가난의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하고 눈은 떳지만 장님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해 오던 사람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깨우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감동의 현장이 있다.
![]() |
||
| ▲ 한글학교 강의모습 | ||
한글교실에 준비된 교실에 앉은 대다수 학생들의 머리는 온통 흰머리였으며, 연필과 지우개를 든 두 손은 기름기가 없이 메마른 상태로 손등에는 검버섯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봉사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서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용 국어책을 따라서 읽어 나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밝고 높았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진행되는 '한글교실'에는 70여명의 중.장년층 여성들이 참가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교재로 받아쓰기와 따라 읽기를 매일 되풀이 하고 있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호통소리도 크고 야단도 치지만 이들의 출석율은 90% 이상이다.
"이곳 한글학교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자신이 글을 알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에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숨어서 찾아 오지만, 글을 깨우치고 그 기쁨을 맛보고 나면 표정도 밝아지고 나이를 뛰어 넘어서 기쁨으로 학교를 찾는다"라고 한글학교 교사인 한화자씨는 말한다.
현재 한글학교에는 4명의 자원봉사자 교사들이 참여해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김귀례씨(유치원 원장, 봉사3년차), 정흥식씨(학원장.1년차), 송연옥(자원봉사자.3년차), 한화자씨(자원봉사자 한글학교 9년근무)가 그 주인공들이다.
교사들중에서 김귀례씨만 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나머지 분들은 국어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60-70대가 40%정도이며, 50-60대가 40%,40-50대가 20%로 평균적으로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송연옥 교사는 "이곳 한글교실에 오시는 분 중에 한 분은 한글을 읽지 못해, 버스번호와 행선지를 읽을 줄 몰라서, 오직 집 앞에 있는 버스 승강장에서만 버스를 타고 다녔다는 사연을 듣을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학생은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멀리 나가 있어도 집 앞까지 되 돌아와서 오직 그 버스만을 타고 가야 했지만 한글교실에서 글을 익혀서 이제는 아무 곳에서나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서, 이제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 온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무감각하게 들리지만 "글을 배우고 나서 다른 세상을 봤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진심어린 고백과 학교와 교사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는 이들의 표정과 자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책을 들고서도 어디를 읽고 있는지 모르고 당황하던 이분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해서 학교의 교사와 학원강사등으로 일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는 모습에 감동해서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는 음식을 사들고 와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작은 파티를 열어 주기도 한다.
한화자씨는 "이분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와서는,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는 어머니가 고맙고 자랑스러우며, 어머니를 지켜보는 자기들이 오히려
즐겁고 기쁘다고 말한다"고 전해줬다.
교사 김귀례씨는 "노년에 저렇게 배우겠다고 열심인 것이 너무 보기 좋고, 가르치는 우리도 감동
받는다"고 말한다.
지난 1988년 10월 제1회 한글교실을 개설한 이후 16년간 꾸준히 운영돼 온 한글학교는 전 하남시장인 손영채씨의 선한 마음에 의해서 유지되어 오고 있다.
하남 시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손씨는 일부 손님 중에서 한글을 알지 못해서 남이 적어 준 약 이름을 들고 오는 손님이 많은 것을 알고, 이들을 위해서 '모범사회교육학교'를 만들었고 오늘의 한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한글학교를 거쳐 나간 사람들이 매년 30여명 정도로 약 500여명이 이 학교를 통해서 글을 깨치고 문자속에 있는 의미를 터득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주름지고 굵어진 손으로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고 있는 한글학교 학생들의 눈빛은 맑고 향기로웠다.
-------------------------------------------------------------------------------
"성경 읽고, 손자딸도 가르칠 수 있어"
7남매 맏이로 글 배우지 못한 한
풀어
[하남]"글을 못 배운 것이 한 이었습니다" "7남매의 가정이었지만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 돌아 다니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생활을 도 맡아 해 오셨고, 어머니는 산골 오지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해서 우리식구를 먹여 살리셨지요"
![]() |
||
| ▲ 한글학교 신순화씨 | ||
배 고팠던 어린 시절과 학교 가는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들판에서 바라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해야만 했던 지난 시절...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잘 성장해줘 큰 딸은 학원강사를 하고 작은 딸은 개인과외지도를 하고 있지만, 신순화씨의 가슴 한 가운데는 응어리진 그늘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글을 알지 못하는 심정을 누구에게 말 할 수 없고, 부끄러움과 수치감을 어설픈 행동으로 덮어 왔지만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손자딸을 돌보는 가운데 오전시간에 여유가 생긴 신씨는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한글배우는 길이 있는지를 물었고 동사무소에서는 다시 시청으로 연결시켜줘서 지난해 8월 한글학교에 첫 등교를 했다.
"글을 알게 돼 성경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손자딸에게 몇 글자라도 글자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손씨는 "은행에 가서 내 손으로 돈을 맡기고 찾을 수 있는 이 기쁨을 안겨 준 한글학교의 선생님들이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40년 만에 알게 된 한글 배우기에 푹 빠져서 지내는 손씨는 한글반의 반장직도 임명 받았고 이 일로 인한 기쁨으로 생활도 한결 즐거워
졌다고 한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