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사람들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왜 어려운가?양성평등 성교육을 향해서

   

 

 

 

오늘의 시대는 열린 시대로 “열린 학교” “열린 포름” “열린 마당” 등 모든 곳에서 열어 놓고 함께 더불어 하고 있다.  민주사회와 다양성을 지향하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도 하나의 열린 공동체로서 시각을 가지고 자녀 교육을 할 때이다. 그런데 아직도 열기 힘든 것이 있다면 아마 성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동안 우리사회의 성에 대한 언급은 터부시되어 왔다.

 그러나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그에 따른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여러 형태의 폭력과 범죄들이 일상 생활의 이야기 거리로 화하고, 특히 성범죄가 세계에서 2위라는 우리사회에 대한 반성과 염려 때문이다.

 성교육은 생식기에 대한 지식이나 성기 중심의 교육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순결을 지키라는 윤리적 교육이 되어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  가정에서 부모의 성교육은 올바른 창조이해와 그에 따르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명존중, 양성평등,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주체 대 주체로서 존엄성과 책임감을 느끼게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라는 맥락에서 ‘어른’의 입장에서 자녀들이 몸과 성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는 것은 어떤 대답 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피해왔거나 무시하거나 아니면 아이가 성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를 억압해 왔다. 진실에 직면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질문들, 성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만약 어려웠다면 왜 어려운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성은 인간의 근본 욕구이며 만족 시켜야 그 욕구가 조정된다는 본능설이 우리 사회 성교육의 전제를 형성해왔다. 식욕, 수면욕, 성욕처럼 ‘성은 인간의 규제 할 수 없는 본능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은 본능이니 성인이 되면 다 알기 때문에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 요즘의 청소년들의 성 문제(조기임신, 낙태, 원조교재, 성폭력)가 워낙 심각하니 교육시켜야 한다는 입장은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근본 전제는 같다.

우리사회의 성개방과 성자유화라는 풍조 속에서 성에 대한 불건전한 것을 미리부터 알게 됨으로 청소년들은 성적인 욕구를 조절 통재 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성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고 있으나 성을 이야기하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이상의 전제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자.

첫째, 아이들(어른이 아닌 자)의 본능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아이들에게 성적인 욕구라는 본능은 없는가? 혹시 있다면 어른이 될 때까지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른이 되면 저절로 발현이 되는 것이 성 본능인가?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성문제는 오로지 사회의 분위기 탓인가?

둘째, 과연 아이들의 성 문제는 금지시키면 문제가 되지 않는가? 관심을 건전한 방향으로 돌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는 유보하도록 교육하면 되는 것인가?

특히 남아 아이의 경우 운동으로 성적인 욕구를 풀고 그렇다면 여아아이의 경우는? 즉 여성과 남성의 성적 욕구에 차이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기질적인 여남의 차이 인가?  이 두 가지 문제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추어 토론해보자.

생물체라는 인간이 갖는 욕구는 생물학적인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인 명령에만 복종하는 수동적인 개체는 아니다.  즉 인간이 ‘성적이다’라고 야하게 느끼는 조건, 성적인 욕구가 추동 되는 조건은 사람들마다 다르고 또 그 사람이 처해 있는 맥락에 따라서 다르다. 다양한 제도, 친교관계, 신념, 가치체계로서와 사회적인 것, 사회규범과 생물학적 가능성을 다양하게 매개하는 그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것에 의해 성적인 것은 개인에게 또는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게 규정된다.

성별, 연령, 학력, 지역(인종), 결혼여부 등 사람들을 구별짓는 조건들에 따라서 성적욕구는 다르다.

여자냐 남자냐는 생물학적인 조건보다는 여자와 남자로 만드는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힘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욕구는 다르게 표현된다. 이미 존재하는 여와 남아라는 성차의 구조와 그에 의해 설명되고 규정되는 주체의 지위에 의해 그들의 삶의 방식이 설명되며 성적인 욕망이 설명된다. 여자 아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밝혀서는 안되며 밝히는 여자는 이미 여자가 아니다. 아니 밝히는 여자는 자신의 욕구를 내면화하고 있는 여자와는 다르게 구분된다. 연령에 있어서도 위계가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성적인 욕구가 없는 것이 자연화 된다. 이것은 성적 욕구뿐 아니라 성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성적인 욕구와 표현, 그리고 행위 등이 조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적이고 본질적이며 변할 수 없다가 아니라 성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회적인 구성물로서의 성을 고정화되고 흭일적인 자연화된 본능으로 이야기한다면 결국 교육받는 주체들의 자유로운 발달과 사고를 흭일화 시키며 여남의 성적인 차이를 고정화시켜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러한 차단는 결국 성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만약 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변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교육자는 교육받는 주체들에게 교육이라는 맥락에서 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초록색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고 사람들과 관계 맺을 때는 예의를 갖추고..... 등등을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한국사람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성이란 관계형성, 의사소통의 방법이며 살아가는 생존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우리의 생활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수치스럽거나 외설적인 것과 연결 시켜서 생각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성 개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성 그것은 우리자신의 모든 것, 다시 말해서 우리들, 우리의 육체, 우리의 영혼, 우리의 개성, 우리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성교육이야말로 전인 교육이며, 인성교육이라고 믿으며, 미술, 음악 공부 못지 않게 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ssialwomen@hanmail.net)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교차로저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