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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도와주는 농장’ 유수봉씨가족과 함께 20평 크기의 비닐하우스 생활중

 “욕심을 버리게 해 달라”는 짧은 기도로 하루 시작

매일 400명에게 식사제공 ‘도와주는 농장’ 유수봉씨

하남,광주,용인,안성외 전국에 ‘무료급식소 개설 계획

 


[하남]매일 무료 급식소를 찾는 400명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식대비로 매월 1천만원을 지출하는 그의 현 직업은 노점 채소판매상이다.

그는 매일 1톤 트럭에 먹을 음식을 싣고 하남과 광주시, 용인시, 안성시에 있는 ‘도와주는 농장’을 들러서 가져간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단 1평의 땅도 갖고 있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3가족이 살고 있는 곳도 2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이다.

   
▲ 길거리에서 야채장사를 하면서도 매월 1천만원을 들여서 400명의 불우이웃들에게 무료급식을 지원해 주고 있는 <도와주는 농장>의 유수봉씨
자신을 ‘머슴꾼’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유수봉씨(67. ‘도와주는 농장’ 운영자)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

23년 전, 사업에 망해서 하남시에 오기 전에는 신갈에서 식품공장을 운영 했었는데, 당시에는 어찌나 사업이 잘 되던지 1개의 공장부지 만들어 팔고 나면 주택 30채를 한꺼번에 매입 하기도 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도 역경은 다가왔다.

 

사업실패후 1981년 하남으로 이사

그 많던 재산도 사라지고 사업이 망하면서 1981년 하남으로 이사를 왔다.

그 흔한 연탄 한장 살 돈이 없어서 솔방울을 따다가 불을 지피자 주인이 쫓아내서, 지금의 비닐하우스 집이 있는 하남시 풍산동 가나안농군학교 인근으로 임시방편의 거처를 만들고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몸뚱이만 있어도 부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자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1984년, 하남시 관내 장애인 2백여명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망월동 지역에 임차농 7천평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그 중 2천여평에서 나온 소득은 단 한 푼도 손대지 않고, 모두 장애인을 위해서 사용했다.

하남시내 5개 지체부자유자 시설에 김치를 담가 보내고 쌀 가마니를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만 불쌍한 것이 아니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신장 1동 동사무소 앞에서 쌀 100가마를 준비해서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수봉씨의 선한 마음과는 달리 쌀을 받아가는 사람중 절반 이상이 생활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쌀을 가져 갔음을 뒤 늦게 알고, 도와주는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풍산동에 무료급식소 개설

이러한 사연을 안고 4년전 하남시 풍산동에 ‘무료급식소’가 처음 만들어 지고 매일 점심시간에 밥을 지어서 반찬과 같이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남에는 매일 70여분이 ‘무료급식소’를 방문해서 식사를 하며, 지난해 만들어진 광주시 무료급식소에는 100명, 그리고 올 해부터 문을 열기 시작한 용인시(70명)와 안성시(120명) 지역에도 봉사자와 이용자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주 짧게 기도 하는데 흔히들 말하는 복 받게 해 주고 잘 되게 해 달라는 것은 아예 하지 않고, 다만 “욕심을 버리게 해 달라”는 내용이 전부라고 한다.

야채장사와 급식소 음식준비용 신선한 야채를 구입하기 위해 6시경 가락시장에 도착해 일을 보고 아침 9시에 무료 급식소에 도착해서 1톤 트럭에 밥을 싣고 출발한다.

오전 10시 20분에는 광주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무료급식소’ 도착, 경안천 주차장에 설치된 ‘용인 무료급식소’는 11시 10분 도착, 안성시에는 정오시간에 도착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밥 한끼 줄 이유가 없지만, 쓰러져 가는 나에게 희망을 주고,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말씀 하시는 그 분의 뜻을 쫓아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유씨는 말한다.

지난해 12월에 외아들이 결혼식을 올렸지만 전세금은 물론이고 양재기 하나 사주지 않았다.

다만 결혼식 몇 일 전에 쌀 2가마를 사 주면서 며누리 될 사람에게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선대에서 잘 하면 복 받는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복 받을 일 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무형의 재산 수십억을 받게 된다”

 

외부로 부터 재정도움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방식

‘도와주는 농장’은 행정기관이나 개인들로부터 일체의 후원금을 받지 않고 유수봉씨 개인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큰 재산을 모았다가 두번씩이나 망하고 보니, 사람이 쌓는 재산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유씨의 이러한 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려지자 순수한 자원봉사들이 줄을 잇기 시작해서 이들은 점심시간 봉사와 식사 전.후 준비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23년에 걸쳐 배 한 척을 만들었습니다” “그 배는 외부의 도움 없이 움직이는 자급자족하는 형태로 성장했고, 그 배에서 일하는 선장과 선원은 모두 가난한 사람으로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유일한 배이다”고 유씨는 설명한다.

이제 스스로 움직이는 배가 전국을 향해서 서서히 움직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국의 도청 소재지 도시에 ‘도와주는 농장’을 만드는 일에 착수한 것이다.

“하루 14시간을 일하고 하루 40만원씩을 지출하지만 나는 어데 가서 품삯 받을 곳도 없고, 편하게 다리 뻗을 내 집 조차도 없지만, 나의 조그마한 움직임으로 우리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회가 만들어 진다면 그게 나의 품삯”이라고 말한다.

밥을 싣고 광주와 용인, 안성을 향해 직접 운전중, 신호 대기중인 옆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아는체 하고 “무료급식소 하시죠? 수고 많습니다”라는 말을 붙일 때 삶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밥' 이라고 생각 하지만 나는 '다이아몬드'로 보여

“사람들은 매일 실어 나르는 이 음식을 밥 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번쩍 번쩍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실고 다닌다는 생각으로 운전을 합니다”라고 유씨는 말한다.

‘도와주는 농장’과 ‘무료급식소’를 통해서 이 사회에 심어지는 보석 같은 마음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열심히 일 하고, 내일은 우리를 선한 곳으로 인도하고 15년 전 길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신 그 분의 뒤를 따르는 것 뿐이다”고 말한다.

금년 가을 대전에 ‘무료 급식소’를 개설하는 구상에 한창인 유씨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남시에 종합병원을 세우고, 서해안에 쌀 생산을 위한 20만평의 농지를 확보를 감당해 나갈 복지재단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이 재단이 만들어지면 저의 이름과 가족은 아예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다만 이 재단이 내가 죽더라도 ‘도와주는 농장’처럼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겠다”는 다짐이다.

유씨의 아름다운 사연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유씨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

전국 10여개 도시에 ‘도와주는 농장’이 운영하는 야채가게를 개설하고, 그 곳에서 나오는 판매 수익금으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20여년 동안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신 분을 바라 보면서 유수봉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갖는다는 것도 아닌데, 그 분이 안 들어 주겠습니까?”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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