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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촬영할 때 주연 및 조연을 제외한 엑스트라(Extra)와 기타 잡역은 모두 하남주민이 하였다. 특히 양00씨(샘재)는 조랑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양씨는 말과 함께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무령이 타고 다닌 말이 그 말이다. 촬영장비는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이고, 촬영장소까지는 통로도 불편한 곳이 있어서 주민이 지게로 저 날랐다.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가 65달러(5,000원-한국은행 통계) 하던 시절이므로 엑스트라 출연자 및 기타 보조자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산도를 하남에서 촬영함으로써 하남주민에게 영화에 대한 인식을 업그레이드(Up Grade)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촬영장소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동의 집은 한옥[韓屋-草家(초가)]으로 필자의 큰댁[전 경기도 교육감(조성윤)의 생가, 현재 부존재]이고, 옥랑의 집도 행랑채는 한옥[초가, 교산동 김재천家 현재 부존재]이었다.
무령의 집은 양반댁 한옥[기와집, 교산동 박영철 생가, 현재는 재건축된 건물]으로 담장도 기와를 이은 돌담장이었다. 연회(宴會)를 벌이는 곳은 향교의 외삼문(外三門)과 명륜당(明倫堂)사이 마당이다.
수동과 옥랑이 데이트(Date)할 때 옥랑이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려고 종종걸음으로 건너는 것을 수동이 뒤따르다가 옥랑이 넘어지자 수동도 넘어져 둘이 다 물에 빠지자 결국은 둘이 신나게 물장난을 치며 좋아한다. 그 개울이 ‘담안’ 마을(교산동)의 ‘밀미’ 동산 서쪽이다.
그곳은 덕풍천의 상류(고골천)로 그 당시 이 개울에서 ‘새청’(교산동)쪽으로 논에 물을 대려고 보(洑)를 만들어 놓아 보 안쪽(개울)의 수심(水深)이 약 1m 정도 되고, 물이 괴어있는 곳은 작은 운동장 만 했다. 물옆에 있는 바위(밀미동산 서쪽 하단부)는 천연적으로 다이빙 보드(Diving board)처럼 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미역 감으면서 그곳에 올라가 물로 뛰어내리고, 물장구치는 등 어린이들의 물놀이터였다.
그 개울은 청정지역이어서 송사리, 생이[새우, 토하(土蝦)], 붕어, 중트라지, 피라미, 불거지[피라미 수컷, 혼인색(婚姻色)] 등 1급수에서 서식(棲息)하는 고기들이 있었다.
남의 눈을 피해 들판인 밀밭 속에서 수동과 옥랑이 혼인식을 한 장소는, 춘궁동 5층 석탑(보물 제12호)과 3층 석탑(보물 제13호) 옆의 밀밭이었다[그 당시 필자의 종조부(從祖父)님 소유]. 야외(野外) 혼인식을 하고 첫날밤을 지낸 후, 농민이 소에 쟁기를 메어 논(필자 부친 소유)을 갈 때, 둘이 나란히 축동[=동구(洞口), ‘궁안’마을 축동]을 나서서 마을을 떠난다.
고목(枯木)에 벼락이 칠 때[세트, Set], 수동이 무령과 싸우다가 무령의 목을 "V"자로 벌어진 나무 사이에 끼워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곳은 향교 바로 서쪽측면에 있는 은행나무[하남시 보호수 경기-하남-2 수령(樹齡) 500여 년]로 현재도 그 나무는 그대로 살아 있다.
끝으로 필자는 고(故) 김기영 감독(1998년 타계)의 명복(冥福)을 빌면서, 하남지역을 예술적 측면에서 일찍 개화(開化)시켜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영화관계인이 이런 환경을 활용하여 제2의 ‘양산도’를 제작했으면 하는 것이 희망사항이다.
“과거의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의 역사에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한 독일 제6대 대통령 바이츠 제커(Richard von Weizsaecker)의 말을, 역사도시 하남에 거주하는 하남시민들이 참고하기를 희망한다. 끝.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uk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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