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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悲歌)는 애창곡 선정 말아야(3)조성국 경민대학 객원교수 · 법학박사
  • 조성국 칼럼니스트
  • 승인 2008.12.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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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에서 2001. 7. 11. 23:00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을 방송했는데 제목이 '애창곡'이었다. 방송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가요계는 애창곡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묘한 속설이 있다. 애창곡을 통해본 그들의 인생 역정.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는 슬픈 운명의 길을 걷고, 기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기쁜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는 미신 같은 속설이 있다."고 하였다.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는 요절(비운)했다.

  1926년 여가수 윤심덕(당시 29세)은 자신의 죽음을 찬미하듯 ‘死의 찬미’를 부르고 그의 애인이자 극작가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玄海灘)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하였다.
 가수 남인수는 ‘황성옛터’로 유명했고, “눈감아 드리리”를 마지막으로 1962년(44세) 실제로 눈을 감아 버렸다.
  천재 가수로 칭송되는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 등 히트곡을 많이 남겼다. 그의 노래는 대중들의 심금을 울려 뭇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는 노래 “마지막 잎새”를 끝으로 29세(1971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요절한 가수 김정호는 “간다간다 나는 간다” 마치 장송곡 분위기와 같은 노래 “님”을 부르고 34세(1985)로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즐거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

  송대관은 “쨍하고 해뜰 날 돌아 온단다”라는 내용의 노래 “해뜰 날”을 부르고 아직도 해가 질줄 모르고 있다.
  윤항기(남자가수ㆍ목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노래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른 후,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애창곡이 자신의 운명을 대변한 경우,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애창곡은 ‘나그네 설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라는 내용의 이 노래를 그는 ‘야당가(野黨歌)’라고 부르기도 하며, 한번도 여당생활을 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좋아했다고 한다.
  김응룡 전 해태 호랑이 야구감독은 일평생 ‘목포의 눈물’ 외에는 다른 노래는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1990년 삼성 야구팀과의 Play-off 전에서 3년 패한 후 홀로 숙소에 앉아서 밤새도록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2001년 당시)은 삼성감독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애창곡은 나의 의지인 경우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애창곡은 ‘My way', 이 노래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의지를 많이 드러내 많이 불렀는데 3당 연합 후에는 애창곡을 ’만남‘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 재직시절에 애창곡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였다. 남북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서로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자는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박찬호(야구선수)의 애창곡은 자신만의 굳은 의지가 담긴 강산애의 ‘넌 할수 있어’ 메이저리그 진출 초기에 어려웠던 일과 고비가 닥칠 때마다 ‘넌 할 수 있어’를 부르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동양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노래를 즐겨 부르느냐에 따라 기분뿐만 아니라 운명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떨까?"

  필자는 ‘비가와 슬픈 운명(또는 요절)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는데 이 방송(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애창곡)을 시청하고는 어느 정도 개연성(蓋然性)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흥겨운 노래를 애창곡으로 선정하고, 가능하면 비가는 애창곡으로 선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끝.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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