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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悲歌)는 애창곡 선정 말아야(2)조성국 경민대학 객원교수 · 법학박사
  • 조성국 칼럼니스트
  • 승인 2008.11.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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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과거 청룡부대(해병대) 소총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 최일선에서 적과 싸우면서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서 슬픈 심정을 갖거나 비가를 애창곡으로 하는 장병들은 일찍 전사하는 것을 보면서 이 부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관심을 갖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은 전투를 하면서 주변 상황으로 봐서 죽을 사람이 아닌데 죽고(임00 일병), 살기 어려운 사람인데 살아나는 것(손00 중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은 운명(運命)이 있구나 하는 것과 평소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언가 비운(悲運)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싹트게 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사례를 단편적으로 살펴본다.

  필자가 소대장할 때 소대원이었던 金00 병장은 간단한 오락회를 할 때 애달픈 대사(臺詞)를 혼자 읊으다가 비가를 부르는데 구성지게 잘했다. 즉 비가가 그의 애창곡이었다.

  그는 전투 중에 부비트랩에 의해 다리와 등에 부상을 당했다.

  필자가 소총중대 부중대장이 되었을 때 金병장과 車00 병장(필자가 소대장할 때 소대통신병)을 함께 여단본부에 파견근무를 시켜 생명에 대한 위험은 소총중대보다는 훨씬 적게 해주었다. 사실 필자의 권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명 중 金병장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尹00 해병소위(고대 법대졸)는 필자의 동기생으로 월남전 참전시, 필자와 다른 보병대대에서 소총소대장을 하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각자 전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왕래를 할 수 없어서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그가 필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조소위! 지척이 천리인가 건너편의 어느 산만을 쳐다보며 거기 어디에 조소위가 있을 것으로만 생각하며 멀지 않을 거리를 두고도 펜을 드네…. 우리네 생활에 아무런 고통은 없네, 있다면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아니라 “To be or not to be(사느냐 죽느냐)"의 내재적인 것이겠지. 우리 다소곳한 운명론자가 되어 보세….”

  이 편지를 받고 필자의 마음마저 우울해 졌었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하면 어떤 예감이나 징조가 있는 것일까? 이 편지를 보내고 필자의 회신을 받기 전에 그는 전사하였다.

  李00 해병대위(성균관대 법대졸)도 필자의 동기생으로 해병 제1사단 항공대 조종사로 근무했다. 이 때 그가 조종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토함산(경주)을 돌아오는 등 이 대위와 필자는 둘이서 잘 어울려 다녔다. 그는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을 부르면서 표정이 진지하고 숙연해지곤 했다. 이 노래가 그의 애창곡이었다.

  필자는 그 노래를 부르는데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의심스러워 하루는 그를 술에 취하게 해놓고 말해보라고 채근을 했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다닐 때 여자 친구와 해수욕장에 피서 갔다가 그 여자 친구가 익사(溺死)해서 그 때 잔영이 머리 속에 남아 있다고 실토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 후 그는 월남전에 참전, 군정찰기(L-19) 조종사로서 전투지역에서 임무를 잘 수행하고 귀국하였다. 그 다음, 김포의 해병여단(현 사단)에 근무할 때 헬기를 조종하고 강화도 상공을 저공비행하다가 그가 미처 전선(電線)을 보지 못해 헬기날개[回轉翼]에 전선이 걸려 바다에 추락, 동승했던 미군 대위와 함께 익사하였다. 익사문제로 고민하더니 결국 그도 익사하고 말았다. 이들 3명은 모두 국립묘지(서울 동작동)에 안장 되었다.

  필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가수 차중락은 월남전 당시 주월한국군 위문공연을 여러 번 하였다. 그의 음성은 청승맞고, 남성이면서 여성 같은 음성으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등 주로 구슬픈 가요를 불렀는데 요절(夭折)하였다. 또 여가수 권혜경은 히트곡인 ‘산장의 여인’의 가사내용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있네…" 처럼 실제로 그런 삶을 살다가 근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悲愴)"을 작곡하고, 초연되고 나서 9일 만에 사망하였다(1893년)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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