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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전국적인 이슈만 다루는 중앙일간지에서 우리 지역의 실정을 자세히 다룰 리도 없었다. 귀 소문, 입 소문, ‘뻥’ 소문, 헛소문 따위로 지역정보를 가늠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때에, 한 사업가가 사재를 털어 지역신문을 만들었다. 1994년 9월 15일이 바로 ‘교차로저널’ 창간호가 나온 날이다. 이 사업가는 수익성이 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문명의 사각지대인 고향에 다소나마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교차로저널을 창간했다고 한다.
교차로저널은 창간 초기에 숱한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고을 사또’노릇을 즐기던 시장 등 지역의 권력자들 눈에 교차로저널이 건방지게 보인 것이다. 우습게 알던 신문인데도, 기사가 한번 나가면 하남· 광주가 들썩거리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회유와 협박의 작업이 들어갔다.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뭔지 알겠지?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마, 말 안 들으면 문 닫게 해주지’라고는 눈에 힘주고, 교차로저널을 쏘아보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지록위마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만 알아들었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는 가판대에서 무가(無價) 정보지를 보급하고 있다. 교차로저널도 하남· 광주 요소요소에 있는 가판대를 통하여 1만 5천부를 시민들에게 보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남시에서만은 가판대와 교차로저널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가로질서 정비에 전력을 기울이는 하남시의 방침에 따라 수시로 가판대가 수거되기 때문인 것이다.
시민들은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어째서, 교차로저널을 구경할 수가 없느냐’고 야단들을 치신다. 그때마다 우리는 곤혹스럽기만 할 뿐이다. 하남시가 ‘방침’을 바꾸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YS가 신민당 당수 시절, 유신독재에 항거하면서 줄기차게 외친 말이 있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 말이다.
그렇다. 이상한 귀신들이 밤새 설칠지라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우리는 새벽을 맞게 된다. 교차로저널도 새벽을 맛보고 또 맛보았다. 그리고 또 새벽을 기다린다. 14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어온 바위처럼, 교차로저널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오늘로서 1,000호를 간행하게 된 것이다.
하남· 광주와 같은 소도시에서, 14년 동안, 1만 5천부 씩, 1천 번에 걸쳐 지역신문을 발행하였다는 ‘역사’에 벅찬 감동을 금할 수 없다.
이 감동을 살려서, 교차로저널은 지역 언론기관으로서의 사명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시민들의 권리인 ‘말할 자유· 알 권리· 액세스권· 반론권 등’의 초석이 되는 신문으로서 거듭날 것이다.
교차로저널은 하남·광주시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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