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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자, "광주서만 제작하지 않았다"

그동안 왕실도자가 광주시 분원지역에서만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광주 외 지역에서도 왕실 도자가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 돼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6일, 가평에서 철화백자용항아리 등 조선시대 백자유적이 다량 발굴된 것과 관련 자료를 내고, "왕실의 상징 문양인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가 가평에서 발견 된 것은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기가 광주에서만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기도자박물관은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도로 공사구간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가평군 하면 하판리와 웃노채에서 백자가마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자박물관 학예팀이 지금까지 확인한 유구는 조선중기 운영된 백자가마 4기와 흙을 정제하는 수비시설과 그릇을 성형하고 말리는 건조시설 등 공방지 12곳.

이에따라 경기도자박물관은 지난 6월 23일부터 11월 현재까지 보다 구체적인 유적의 성격과 운영시기, 출토유물 등을 확인하기 위해 하판리 백자가마유적에 대한 정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조사결과, 출토유물은 백자를 구워내는 가마와 작업시설, 폐기물 퇴적층에서 문양이 없는 순백자와 철안료로 문양을 장식한 철화백자 등이다. 출토유물중 그릇의 종류는 발, 접시, 잔과 같은 일상생활용기를 비롯해 항아리, 병, 대발, 떡살 등 다양한 기종이 확인됐다는 것.

특히 철화백자는 용(龍)과 구름(雲), 대나무(竹이), 초화(草花), 문자(文字) 등 다양한 문양이 장식되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기도자박물관이 발굴조사한 하판리 백자가마유적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점은 지금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다른 여러 곳의 지방 철화백자가마에서와 달리 철화운룡문항아리가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운룡문은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기 때문에 그동안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는 주로 왕실사용의 자기를 생산하던 경기도 광주에서만 제작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철화백자운룡항아리가 지방에서도 제작되었음이 새롭게 확인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운룡문항아리는 크기가 대, 중, 소형으로 다양하며 장식 표현에 있어서도 획일화 되어있지 않고 다양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향후 생산과 소비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방', '편계' 등의 한글이 시문된 백자편도 출토됐다.

가평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통해 관요(官窯)가 운영되던 경기도 광주에 질 좋은 백자원료를 공급했음을 알 수 있고, 지난 2006년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실시한 청계산·운악산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23개소의 백자가마가 확인됐다.

실제로 조사단은 하판리 유적에서 반경 300m 떨어진 사면 절개지에서 백토를 확인했으며, 주민들의 증언도 예부터 이곳에서 백토가 많이 출토되었다는 것을 확보했다

따라서 이곳에서 백자가마가 대규모로 운영되었던 것은 양질의 원료가 충분히 공급되었던 것이 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청계산·운악산 일대가 조선중기 가평지역 백자생산의 중심지였음도 알 수 있다는 것.

경기도자박물관 관계자는 하판리 백자가마유적의 운영과 관련해서 "철화백자의 문양과 제작양식으로 보아 1665년에서 1676년까지 운영되었던 관요(官窯)인 광주 신대리 백자가마와 일부 겹치거나 조금 늦은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6일 오전 가평군 하면 하판리 현장에서 현장 지도위원회의를 개최하여 조선시대 가평지역에서 백자가마가 대규모로 운영된 의미, 유적의 성격 및 운영시기, 향후 이들 유적의 처리 등에 대한 다각적인 문제들을 토의할 예정이다.

 

이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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