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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지신(社稷之臣)
  •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 승인 2008.10.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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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말 그대로 난세(亂世)이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곤두박질치고 있는 국가의 운명을 제대로 붙잡아줄 수 있는 경륜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왕좌왕만 할 뿐이지 이 난세를 해결할 그릇들이 못되는 것 같다.

정치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기준은 신뢰(信賴)이다. 그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할지라도, 국민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생각나는 인물이 중국 한 무제 시대의 급암(汲黯)이다.

급암은 백성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가치관이 분명한 공직자였다.

무제가 태자로 있을 때 급암은 비서로 있었기 때문에, 적당하게 아부를 한다면 죽는 날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제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정치가 잘못되면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따라서 독재군주인 무제로부터 ‘찍힐’ 수밖에 없었고, 기회주의자· 간신들에게는 공동의 적이었다.

무제는 급암을 예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능력과 도덕성은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큰 사건이 발생하여 민심이 흉흉한 지역이나, 세력가들이 많아 다스리기 힘든 관할에는 급암을 책임자로 보냈다. 만일 그가 민심을 안정시키지 못하거나, 치안에 실패한다면 그것을 빌미로 숙청하려는 ‘깊은 뜻’도 숨겨져 있었다.

그러한 깊은 뜻은 아랑곳없이 급암이 책임자로 가는 지역마다 평온함을 찾는 것이었다. 무제는 고개를 끄덕거렸겠지만, 오직 아부로만 출세한 벼슬아치들의 가슴 속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백성들이 급암을 믿고, 존경하고,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기 때문에 난국이 평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급암은 무제와 간신들의 견제로 인하여, 지금으로 치면 장관급 벼슬에만 맴돌았을 뿐, 더 높은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제후인 회남왕(淮南王)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을 때, 급암을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급암은 직간을 좋아하고, 절개를 지켜 의(義)에 죽는 사람이므로 옳지 못한 일로 그를 유혹할 수는 없다. 그에 비하면 승상(국무총리) 공손홍(公孫弘)을 설득시키는 것은 보자기를 벗기고, 마른 잎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이다.”

어느 날, 무제는 한 신하에게 급암이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급암은 보통 벼슬에 앉혀 놓았을 경우에는 별로 남보다 뛰어난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떤 상황일지라도 굳게 나라를 지켜낼 인물입니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지신(社稷之臣)이란 것이 있었다는데, 급암과 같은 사람이 그에 가까울 것 같다.”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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