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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신이 대로에 드러난 것이 인터넷 신문에 떠서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저항하다가 뉴스를 타더니 이제 어떻게 뉴스를 타서 유명세를 만드는 가를 터득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못 유명한 것을 notorious 라고 하여 별로 유쾌하지 않게 유명한 것을 말한다.
그렇다. 그의 그런 치기(稚氣)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그러한 행위를 벌린 것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위 S 대학생이라는 것부터가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좀 공부깨나 한다는 사람이 온전한 정신 상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히틀러와 같은 광기(狂氣)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매우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왜 군대가 필요한가? 이것의 답은 남북 대치 상황과, 그리고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야 이 문제가 풀린다. 이것은 해가 자전하여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밤과 낮이 있는 것과 같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을 해가 안 뜨게 하자 느니, 밤이 없도록 하자 느니 한다면 미친 짓 아닌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자연 과학적 진리와 사회 과학적 진리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집안만 하더라도, 한국동란 때 국군이었던 삼촌이 전쟁 발발과 동시에 시신도 없이 산화하였고, 장남인 필자도 3년간의 국방의 의무를 마쳤고, 외아들은 임관 훈련과 3년의 장교 생활을 통해 아프간까지 다녀온 파병 장교인지라, 이러한 일을 볼 때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국민이 대대수라는 것을 아무리 청년이라 해도 부정한다는 것과 더욱이 국민의 세금으로 화려하게 공부하는 S 대학생이라는 사람으로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인간은 본디 수치를 느끼며 살아가도록 체면이라는 허울이 입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동란에서는 16개국이나 참전하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였고, 그들의 고귀한 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존립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방의 참된 가치와 진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캐나다 쪽의 도시가 나이아가라폴스이고, 인구가 약 4,000 여명의 소읍이다. 그곳의 한 호텔 앞 공원에 현충비가 있는데, 한편에 한국동란에서 4명의 젊은이가 산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콧등이 찡하고, 부끄러움이 엄습하였고, 그리고 고마움으로 몸부림치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1950년 경 미국 몬타나주의 인구는 불과 몇 십만이 안 되는데, 그들의 현충공원에 무려 167명의 한국동란 전몰 군인 명단이 있고, 한국동란 참전비가 따로 만들어져있어 우리를 위해 이들이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빚은 못 갚을망정, 소위 대학생이라는 젊은이가 벌거벗고 국군의 행진을 방해하였다니,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하늘에 부끄러워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국립강릉대학교에 만은 이러한 학생이 한명도 없고, 그리고, 그렇게 키워내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교육자의 사명이며, 젊은이들이 미래의 동량으로 국가를 짊어지도록 교육하는 교수로서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지난 봄 금강산학회에 갔다가 내금강으로 가는 도중 주위에 보였던 북한의 광경은 왜 우리가 더욱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국가 발전에 매진해야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벌거벗은 산야, 골짜기 마다 지키는 헐벗은 북한 병사, 그리고 보수하지도 못한 홍수에 무너진 하천, 단층의 초라한 주택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전신주들은 그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지도해야하는 대학의 교수로서 '하늘에 부끄러워, 오호 애재라 우리 젊은이들을 구하소서!'하는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정기성 칼럼니스트 kisungchu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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