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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의 메아리조성민 한양대 법대 교수 / 본지 칼럼리스트
  • 조성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08.08.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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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있는 청학동에 도착하자 마을 곳곳에 서당간판이 정겨움을 더한다. 이 마을에서 가까운 삼신봉에서 자연을 통해 생활의 지혜를 얻어 보려고 단숨에 달려온 9백리길! 배낭을 꺼내어 메고 삼신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에 들어섰다.

나무 위에서 목청을 길게 드리우는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더위를 식혀준다. 울퉁불퉁한 산길에 뒤뚱거리는 발걸음이 안쓰러운지, 새까맣게 몸치장을 한 물잠자리가 머리 위에서 궁디를 씰룩대며 까불거린다. 그 모습을 흉내 내며 겅중겅중 걷자 발바닥에 불이 난다.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삐리리릭” 하며 울어대는 새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장마에 뿌리 채 뽑힌 낙엽송이 계곡을 가로질러 벌렁 자빠져 있었다. 쓰러진 낙엽송을 보며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가 넘어진 것은 뿌리를 땅속으로 깊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태풍 탓이 아니에요.”라는 낙엽송의 메아리가 골짜기에 퍼졌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널빤지로 된 가파른 구름다리를 지나자 다리가 아프다. 가쁜 숨을 들이키며 쉬고 있노라니, 계곡물이 큰 바위를 넘으며 폭포를 이루는데 그 소리가 우렁차다. “낮은 데로 임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참된 삶입니다.”라는 물의 메아리가 계곡을 감돌며 여울졌다.

가던 길을 재촉하려고 고개를 들자 참나무 옆 삼각바위에 앉자 있던 다람쥐가 눈을 마주친다. 잠시 후에 다람쥐가 입을 쫑긋거리며 바위틈으로 사라지자, 그 자리에서 메아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웃음을 잃지 마세요. 웃음은 만복의 근원입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한여름에 무성한 잎을 키운 싸리나무들이 길을 막는다. 두 손으로 잎을 헤치며 나갈 때, “우리들은 꼼짝달싹 못하지만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의 환희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입니다.”라는 메아리가 짙은 향기 속에서 묻어 나왔다.

온몸에 흐르는 땀을 지고,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에 올랐다. 드디어 삼신봉에 도착했다. 

널찍한 바위로 사방이 탁 트인 삼신봉정상에 서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쇄락하게 한다. 바람이 “지나간 일을 되 뇌이지 말고 이 산꼭대기에서 저 밑으로 날려버리세요”라는 메아리를 남겼다.

조망이 뛰어난 삼신봉에서 지리산을 빙둘러볼 때, 푸른 숲 사이에 띄엄띄엄 서있는 회백색의 고사목이 반갑다고 손짓을 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 하는 일에 몰두하기 바랍니다.”

멀리 보이는 천왕봉을 향해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산 밑에서 울리기 메아리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와 봉우리에서 합창을 하듯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남을 탓하지 마세요. 낮은 곳으로 임하고 겸손한 삶을 사세요. 웃음을 잃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과거에 집착하지 마세요. 후회 없는 삶을 사세요.”

이 산의 메아리가 던진 메시지를 마음에 되새기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동서남북을 차례로 응시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산에 올라올 때 무겁던 몸이 가벼워지고, 어지럽던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려놨던 배낭을 다시 걸머지고 올라온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아리소리가 발길에 툭툭 채였다. 쉬지 않고 따라오던 메아리소리가 등산로가 끝나는 마을 어귀에 이르자, 갑자기 산골짜기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조성민 칼럼니스트  cho288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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