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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불도 다시보자
선한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작은 위성도시는 광역화장장이 질러놓은 분란의 불길에 휩싸여 한참 고달팠다. 까딱하면 지역 주민들은 위험한 화장장 잿더미에 묻힐까 질겁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역이 온통 분노와 허탈의 불길이 미여드는 홍역을 치른 것이다.
화재사건 진압의 안전수칙은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광역화장장 분란의 불씨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그 불씨에 묻어있던 독선과 오만은 어디로 갔을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됐다고 방심하다 큰 코 다치는 경우를 빗댄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잿속에 숨어 또 큰 화마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광역화장장 유치는 무위로 끝났지만, 안으로 숨어든 분란의 불씨를 예의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광역화장장 유치 강행은 지역의 모두에게 아픈 상채기를 남긴 분란의 불씨였고, 척박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불씨였다.
실로 광역화장장 유치강행은 아주 잘못된 오만과 독선행정이었건만 책임지는 누구하나 없이 슬그머니 숨어 넘어가고 있다. 참회의 흔적이 없는 그 모습이 또 다른 독선행정과 뻔뻔함 그리고 보복의 그림자로 어른거리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눈 흘긴다
어쨌든 광역화장장은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오만과 독선적 사고방식의 불씨는 이곳저곳에 살아 있다.
광역화장장 유치가 무위로 끝나니, 힘없는 공무원을 징계 요청하는 등 보복의 밀정이 비겁한 거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뺨맞고 집에 와서 눈 흘기는 못난 짓 아닌가.
시민 없는 독선행정, 공개 없는 밀실행정 속에 각종사업(복지시설, 에코타운 분양, 명품, 아울렛 등)을 쫓기듯 서둘러 몰고 가고 있다. 시민의 알 권리를 비웃고 있는 오만한 행정이 눈에 보인다.
시장이 강행하려던 대단위 광역화장장 시설은 그 자체가 반생명성이지만, 근본은 지역을 서울과 경기도의 위력에 내 맡긴 대가성 돈으로 지역발전 자금에 쓴다는 이른바 개발성장주의 - 황금만능주의 사고(思考)가 분란과 재앙의 불씨인 것이다. 그 것은 한반도 대운하(4대강 정비),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한미FTA) 등의 꼼수들과 연대가 되어 또 시민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다.
목마른 자가 샘 파야 되는 세상
성장개발 - 황금만능주의는 대의정치와 다양성의 토론문화를 해산시키는 폭군이 되고 있다. 제도로서의 의회정치는 불구자가 되고, 언론도 시민의 진정성을 대변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팔수 밖에 없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은 지금 목이 말라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 뿜어내는 화장터 매연이 시민건강에 무해하다는 시장의 독선이 시민을 분노케 하였고, 유럽과 일본에서는 광우병 위험물질(SRM)이라 하여 소각 처분하는 부위까지 수입해서 학교 급식으로 이어지는 현장을 외면한 채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핀잔주는 대통령이 10대 청소년을 거리로 몰아낸 것이다. 생명보다 돈을 앞세운 정치지도자들의 천박성에 실망한 것이 길바닥의 분노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짓밟는다고 분노가 사그러질까?
쏟아낸 분노를 보라. 어린 학생들의 손에 「가난하면 죽어라」는 플랜카드가 들려 있다. 어느 여학생은 촛불집회에 “놀려고 나간게 아니라 살려고 나갔습니다”라고 인터넷에 애틋한 글을 올렸다. 코끝이 찡하게 느껴지는 어린학생들의 외침 아닌가.
지금은 권력과 돈 앞에 사람들이 맥을 못 추고 있다 해도, 비정규직의 단두대 앞에 쫓기고 있다 해도, 근근이 시민은 기어코 살아남아 결국 승리할 것이다. 시민과 싸워 이기는 권력은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진정성도 없고, 시민을 모시지 않는 어떤 시정(市政)권력도 끝까지 시민을 속일수도 이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권광식 칼럼니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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