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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이 뒷자락을 질질 끌면서 마지못해 사라져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렀다. 머릿속을 뒤집어놓던 시절도 가고 봄이 찾아왔으니, 이제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지라는 안도감에서 박수까지 쳐댔다.
어느덧, 5월 초하루가 되었다. 기다리는 습관이 몸에 배서일까. 계절은 무르익어가고 있건만, 우리는 아직도 먼발치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큰 것일까. 이 땅 곳곳에 봄기운이 솟구쳐 백화만발(百花滿發)하였건만, 우리에게는 봄날이 생소하기만 하다.
정녕 봄이 왔다면, 이 땅에 피어나야할 화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의’(信義)이다. 신의가 사회의 기본축이 되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서로 믿는 사회, 의(義)를 소중히 여기는 세상에서는 앞날의 예측이 가능하고 행복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가 실종된 세계는 금수(禽獸)의 영역이다. 신의가 없는 자들은 ‘누군가 내 등에 칼을 꽂지나 않을까, 이 사람이 혹 사기꾼이 아닐까,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권을 챙기려는 수작이 아닐까’ 등 항상 의심하고 불신하면서 살아야 한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오면, 이 땅에 희망의 나무가 심길 것으로 믿었다. 봄이 오면, 분열과 갈등이 종식될 줄 알았다. 봄이 오면, 지난겨울을 털어내고 하나가 되는 이벤트가 있을 줄로 기대하였다. 잃어버렸던 ‘신의’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우리의 가슴속은 썰렁하기만 하다. 봄이 왔는데도, 희망의 나무는 보이지 않고 공염불만이 시끄럽기 짝이 없다. 봄이 왔는데도, 분열과 갈등을 더 조장하는 것 같다. 봄이 왔는데도, 그 누더기 위에다 생색나는 겉옷을 끼워 입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봄이 찾아온 이 땅에 무엇을 심고,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구월심(日久月深), 우리는 봄을 기다려 왔다.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은 것은, 그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직도 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신의’라는 희망의 나무를 심고, 온 힘을 기울여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도록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짜 봄을 만끽할 수 있다.
기회를 놓치게 되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악순환에 이 나라는 또 다시 ‘골병’이 든다. 다시 찾아온 봄을 막연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안타까움 속에 봄날은 가고 있다.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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