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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허망을 희망으로 꾸리는 사람들
  • 권광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08.01.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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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를 넘기고 허망과 희망이 엉켜진 새해가 왔다. 입으로 하는 진보개혁 신자유주의 판을 거두고, 자본을 상전으로 모시는 신자유주의적 친기업 실용주의가 등극한다.
이른바 친기업 실용주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한 채, 경쟁에서 이긴자 만이 득세하는 판이 엄청 분주하게 벌어질 것 같다. 잘 사는 사람들만 더 잘 살 수밖에 없는 돈 중심 실용주의 판세 - 못사는 못난 것들은 일판에서 걸 거치는 천덕꾸러기로 몰려 살아남기도 쉽지 않을까 걱정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하니 돈이 최고, 결과만 중시되는 실용주의 세상 판에서 사람 사는데 정말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태어났으니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살고프다. 세상에 죽지 않고 사는 것만큼 소중한 것 어디 있는가. 심지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할 정도로 산다는 것이 귀한 이유를 그대들은 아시는지?
하건만 우리 이웃의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이 죽지 않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산다는 것이 이가 갈리게 피곤한 이유를 그대들은 아시는지?
세상이 저 못난 것들에게 가하는 소외는 이유가 있는 것이며, 회피할 수 없는 것일까?
묵은해를 홀대한 것처럼 보내고 보니, 아쉬운 일들이 가슴 가득 넘쳐든다. 벌써 거년의 주민자치 민주주의는 준비되지 않는 시민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었기에 그것은 희망과 허망으로 뒤죽박죽 실타래 같은 역사의 기억으로 훌쩍 사라지려는가? 그리고 친기업 실용주의 위세에 주눅이 들고 말 것인가?
아무리 엉겁결에 들이닥친 주민자치 소환투표라 해도 그것은 언짢은 기억으로 묻어버릴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 - 시민의 힘으로 엮어낸 생동하는 지역공동체 문화 아닌가 !
모든 패배는 억울한 법, 소환투표가 절반의 성공이라 절반의 위안이 된다지만, 광역화장장 유치 독선행정이 불러들인 반목과 갈등의 상채기는 여전히 시퍼런 멍으로 응어리져 있다.
멍든 응어리 원인자 그대로 돌아온 김황식 시정은 출범하는 실용주의에 편승해서 호기만장(豪氣萬丈), 시민의 절절한 호소엔 아랑곳없이 다시 오만한 시정(市政)으로 기승을 부릴 때, 마을은 - 시민은 또 얼마나 아파할까?
지난 소환투표의 진정성은 단순한 찬반 투표행사가 아닌 시민의 삶의 질 향상, 즉 지속가능한 생명ㆍ환경 마을 지킴운동 그것이었다. 하기에 아무리 실용주의 판을 이고지고 밀어 부친다 해도, 시민의 생명ㆍ환경을 담보로 하는 광역화장장 유치 싸움에서만은 패배가 용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주민의 패배는 곧 마을 포기이고, 시민 버린 시정, 주민 없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주민의 희망을 몽땅 도둑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와 희망을 다시 본다.
범대위 사람들과 시민들을 생각하면 <노인과 바다>에서 위대한 용기와 희망을 보여준 어부(산티아고)가 떠오른다.
망망 바다에서 고기잡이 노인은 처음엔 한 소년과 같이 있었지만, 40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자, 소년은 다른 배로 떠난다. 훗날 노인은 큰 고래 한 마리 잡지만, 설상가상 상어떼 습격을 받고 천신만고 끝에 항구에 돌아와 보니, 고기는 뼈만 앙상히 남아 있었다. 아무리 해도 어부노인은 허망한 현실앞에 포위되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에게는 자기의 패배에 대해 후회도 절망도 없다. 또 내일을 위해 잠을 잘뿐.
노인은 상어떼와 싸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바다(살아온 마을)를 버리는 것, 그런 생각이 노인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이다.

-희망의 생명공동체 운동
광역화장장 범대위 그 시민들한테서 풀뿌리 마을의 영웅들을 다시 발견하고, 새해 벽두 나는 이렇게 행복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
오늘 나는 허망을 희망으로 엮어내는 범대위 사람들을 거들어 주려 애써본다. 그러한 나의 글 판은 죽 떠먹은 자리 흔적 안 나는 것처럼 별 추임새도 안 되지만, 저 범대위 사람들 그리고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생명공동체 운동을 척박한 세상에 심어(播種)주고 있다.
자본은 그리고 실용주의 맥을 잡은 한반도 대운하와 광역화장장은 이미 생태환경의 위기를 먹고 살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지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아니라, 개발ㆍ성장이 무너뜨린 작은 공동체, 풀뿌리 마을, 시민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똑똑한 사람, 돈 많은 분, 꿀릴 것도 아쉬울 것 하나도 없는 지체 높은 양반은 실용주의 판에 죄다 차출당하고 남은 사람들 중에 누가 풀뿌리 마을 - 시민공동체를 지켜낼까?
그러고 보니 범대위 사람들 - 그 시민들 더 없이 자랑스럽게 돋보인다. 마을 수문장,  시민의 희망 그리고 동산만한 고래와 두 번의 날이나 자기 내 던지는 실갱이, 상어떼의 습격에 굴하지 않고 바다를 지켜 허망을 희망으로 꾸려낸 오늘 한국의<노인과 바다>이어라!

권광식 칼럼니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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