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전-오피니언칼럼
<칼럼> 광주와 실학 연구정기성 국립 강릉대 교수<본지 칼럼리스트>
  • 정기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07.11.29 09:03
  • 댓글 0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 8월5일 경기도 광주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 났다. 지금은 행정 구역이 바뀌어 남양주시 조안면이 되었지만 당시 광주 땅 이었다. 어쩌고 보면 행정 구역이 바뀌어 지금의 강남, 송파, 성남, 분당, 하남 등등이 모두 광주였으니 광주 땅이 넓어 광주(廣州)라 했던 것이라고 한다.

마현은 마재라고 불렀으며, 서울에서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간이 역인 능래역에 내려 한강 쪽으로 걸어 넘어 가면 왼편에 묘소가 있었고, 오른 편에 마재 동리가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분원으로 갈 때면, 가끔 묘소에 올라 비석의 글을 읽고, 앉아 쉬어 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한강이 휘돌아 가는 편이라 앞들은 자갈이 많이 내려와 한때 자갈을 실어 가는 임시 레일이 깔려 있기도 하였다. 지금은 팔당댐에 의해 수몰 되었지만, 나름대로 마재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한강 건너편 손애 마을에서 바라보면, 그림 같은 정경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 기념관이 지어 지고, 지금은 실학 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어 마치 양주가 실학의 고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정약용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곳이지 실학의 본거지라고 보기에는 모자라다. 왜냐하면, 정약용으로 유명한 것은 천진암과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이지, 마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생애에 너무도 많은 저술과 업적을 남기어 그가 벼슬을 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유배되어 ○○○을 지난 것이 나앗다는 평을 듣는 분이기도 하다. 그는 유배 ○○○ 동안 강건하게 지내면서 많은 서책을 남기었다. 물론 전남 강진이 그의 외가 동네(윤선도 집안이 외가이며 모친은 해남 윤씨(尹氏) 명문 대가이며, 남인 당파의 명사인 윤선도(尹善道)의 손녀)와 가까워 많은 서책을 구해 볼 수 도 있었지만, 그의 실사구시의 실학 정신이 없었다면 이러한 업적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주는 천진암과 장약용으로 구성되는 당시 실학의 구심점이었다. 조선 후기 18세기말 서양의 산업혁명 기운이 동양으로 밀려와 서양을 배우고 국가를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 학자들 사이에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천재였던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쳐 그가 관직에 있을 때에도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여 제도를 고치려고 노력했고, 특히 화성을 구축할 때 『거중기』(아래 참조)를 고안하여 많은 인력을 줄였다.

실학은 이후 많은 사상적 영향을 미쳐 조선 후기 산업의 진흥을 가져오기 위해 학자들이 노력하였지만, 쇄국정책(鎖國政策)과 일본의 부흥으로 우리나라는 한동안 발전하지 못하고 어두운 시대를 가졌다. 그러나 최근의 시대정신에 의하여 경제를 우선시 하고, 선진국으로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한 정책이 잘 교육되고 적용되어, 전 세계적인 흐름( 세계화 조류 globalization )을 가장 우선적으로 타고 있는 유연한 민주 국가가 되어 있다. 이것은 선조들이 연구했던 실학 정신이 바탕에 깔려 거부감이 없이 이 사회에 받아 들여 졌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실학 연구가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 부흥을 목표로 한다면,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경제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또한 시대정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치와 공무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등등 실학의 근본정신 아래에서 더욱 굳건히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인 유학과 힌두 정신을 다시 되 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실학연구의 진전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학 연구의 본거지로 천진암이 있는 광주를 삼아야 한다. 이것은 뿌리를 중시하는 우리 사상에 근거하고, 그리고 서울이 가까워 많은 연구원들이 집결할 수 있고, 광주의 품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학 박물관이 편법으로 건립되고 있는 마당에 ≪교차로 저널 2007년 11월 20일 (화)≫ 실학에 대해 광주가 무심할 수는 없다.

실학연구원의 설립이나 실학 연구 포럼 창립을 통해 국가 부흥의 본산지라는 정신적 근거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국가 정책과 지방 행정의 정신적 근거를 발굴하고 천착(穿鑿)하는 실학연구원 설립이 광주에 이루어지기를 기대 한다.

거중기(擧重機) : 정약용이 고안한 기계로 1792년 수원 화성을 쌓는데 이용되었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장치이다. 정약용은 정조가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奇器圖說)》이란 책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개발하였다. 최근 한국 과학원(KAIST)의 학생들이 그것을 풀어 만들면서 정약용의 천재성이 발견된 기계이다.

정기성 칼럼니스트  kisungchung@yahoo.co.kr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기성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