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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정기성 교수(국립 강릉대, 본지 칼럼니스트)
  • 정기성 칼럼니스트
  • 승인 2007.11.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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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아시아 발 국제 금융 위기가 닥쳐오자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의 강력한 경제개혁 요구들을 받아들이는 조건하에서 IMF 구제 금융을 수용한다고 발표 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또한 이 날은 신한국당이 민주당과 통합, 한나라당으로 출범한 날이기도 하다.

1997년 이러한 IMF 구제금융 신청은 한국사회를 강타하였다. 기아자동차의 부도가 위기 촉발의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이었다고 하고 한보그룹의 비자금 사건도 한 몫을 거들었다고 하지만 결국은 국제금융에 둔감했던 한국사회가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사태였다. 당시 한국의 금융 구조가 참으로 취약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인 김영삼은 11월 10일 홍재형 당시 부총리와의 통화 이전까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1997년 말 찾아온 IMF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차입경영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였다. 기업들이 외국에서 빌려온 빚을 갚을 달러가 부족해 일시적으로 겪은 국가적 외화 유동성(流動性)이 없어진 국가 부도위기였다. 아시아 몇 개국이 경제 성장을 도모하면서 지나치게 외자를 차입하였으나, 단기 채무의 악화로 인해 빚어진 참혹한 인재였다. 그 후 각국은 외화 유입과 유보로 재정을 개선하였다. 한국도 국가부도 위기이후 세계 5대 외환 보유국이 되었다. 금융위기 직전 아시아 금융위기 발신지로 추정되는 태국  방콕을 방문했을 때 우후죽순처럼 고층 빌딩 건설이 산재한 상황을 목도할 수 있었다.

IMF 쇼크는 구조 조정이라는 미명아래 인원 감축과 고이자율, 원화 하락이라는 경제적 현실로 한국사회를 흔들었다.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도 기분 나쁜 추억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당장 내일 직장을 잃을 수 있는 감원위험에 마주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언제 자금난에 부딪칠지 모른다는 고(高)위험을 감수하며 경영해야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불신과 경쟁 그리고 양극화라는 참혹한 상황을 끌어 들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기업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회계와 세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필자는 대우 사태의 경우 분명 회계사부족에서 오는 회계 감사의 불투명이라는 명분을 대통령께 강력히 주장하여 년 간 공인회계사 1000명 세무사 700명 합격 시대를 열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보면 IMF 10년이 지난 지금 평생직장이 상징하는 고용의 안전성은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청년실업률이 7~8% 선에서 고착되고,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숫자가 580만 명을 넘어섰다. 사회를 튼튼하게 받쳐주는 허리 역할을 하던 중산층은 거센 양극화 바람에 허물어지고 있다. IMF 직전인 1997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은 2.6%(57만명)였지만, 1년 뒤인 1998년 10월말에는 실업률이 7.1%(154만명)에 이르렀다. 이제와 청년 실업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고, 경제적 취약자의 경우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의 참혹한 현실이 되었다.

IMF이후 수많은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는 비참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업, 정리해고 그리고 명예퇴직을 강요받았으며, 그 후 수많은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IMF 광풍은 지난 10여 년 간 수많은 금융피해자(신용불량자)를 양산하였다. IMF에 의한 금융의 세계화라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절대 다수의 서민들을 갚아도 지워지지 않는 ‘빚’의 굴레에서 고통을 받게 만들었다.

IMF 사태로 인한 신용불량의 피해자를 사면해 주어야한다는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2000년 성탄절 43만 명 사면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을 신청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파산면책신청을 하고 있는 것이 금융피해자들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IMF 10년 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사회적 자산도 너무 많다. 한국경제는 특유의 역동성을 상실했다. 기업가들의 도전적 정신이 줄어들고, 투자보다 배당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성장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기업들을 독려하며 성장을 이끌었던 공직 사회도 활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은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기획을 꺼리는 경향이 만연하게 되었다. 사회적 신뢰가 깨어지고 상하 관계도 바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간의 끈끈했던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되었다. 어쩌면 존경심도 사라져 미국이 산업 사회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연구한 <양키시티 리서치>와 같이 원로들과 선배들을 경시하는 풍조도 낳게 하였다.

지난 10년을 바라 볼 때 어쩌면 우리는 지금 10년 후의 세계를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향후 세계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불안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IMF 체결 그 10주년이 되는 2007년 11월 21일, 우리는 국치의 심정으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88만원 세대=20대 가운데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상위 5%를 제외한 나머지 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평생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88만원은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 74%를 곱한 수치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우석훈 박사가 같은 제목의 책을 내 화제가 됐다.

정기성 칼럼니스트  kisungchu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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