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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백제문화를 찾아 일본으로백제와 관련된 유적 다수 존재 확인

[하남]하남시 문화원이 주관해 양인석 문화원장과 임원, 하남시의회 의원, 역사학자, 본지 기자 등 22명이 지난13일 하남시 이성산성과 일본 규슈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백제시대의 발자취를 찾아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문화 탐방에 나섰다.

   
  탐사에 나선 문화원 일행들
 

이번답사는 11일 이성산성을 답사한 후 일본 규슈지방의 기쿠치성과의 연관성을 염두해 두고 답사에 나선 것.

13일 후쿠오카에 도착한 일행들은 세계 유수의 건축학도들이 모두 다녀간 캐널시티하카다의 건축 기법을 견학하고 곧바로 고로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고로관은 일본 고대(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의 종국 당나라의 상인과 조선의 신라 등의 외교사절을 대접하던 영빈관으로 야구장 증축도중 우연히 발견 되 현재 야구장 증축을 중단하고 발굴을 계속하고 있는 곳으로 당시 발굴된 유물이 전시 되어있다.

또, 지금은 사라진 건물의 초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국내에 존재하고 있는 백제시대의 건물터 초석과 간격이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고로관에 전시된 유적
 

이어진 2일째는 벳부시에 있는 중앙 공민관(문화원과 같은 성격)을 공식 견학하고 미즈다니 공민관 관장으로부터 공민관 현황에 대해 프리핑을 받고 견학에 참여한 문화원 임원들과 공민관 활동의 특징, 지역성, 공공성, 주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강좌의 개발 및 예산에 대한 질문 등 한국문화원과의 차이점에 대해 토론을 펼친 후 공민관 내의 시설물을 견학했다.

중앙 공민관은 쇼와 3년(1928년)준공된 건물로 당시 철근 건물 중 최고의 건물이며 각종 무료강좌를 통해 연간 10만명 정도가 이용하는 벳부시가 자랑하는 문화 공간으로 현재 목포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미즈다니 공민관 관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는 문화원 관계자들
 

당일 오후 도착한 에다후나야마 고분은 백제시대 고분양식과 같은 전방후원분으로 축성된 고분으로서 발굴당시 백제시대 유물이 다수 발굴되고 있으며 고분주변에 해자를 설치했던 흔적을 그대로 복원해 놓고 있다.

또한 고분내의 현실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칸을 막아 왕관과 신발, 곡옥 등 고분에서 출토된 중요유물의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어 고분에 잠들었던 백제인의 지위를 짐작하게 함과 답사자들로 하여금 백제고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에다후나야마 고분
 

탐방 3일째, 드디어 하남시 이성산성과 관련이 깊은 기쿠치성에 도착.

기쿠치성은 7세기 후반에 야마토 조정이 쌓은 산성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긴장된 상태로서 일본은 우호국이었던 구다라(백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원군을 보냈다고 한다.

663년 금강전투에서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패배해 일본이 전쟁의 무대가 될 위험이 생김으로 기쿠치를 비롯한 몇 개의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중 기쿠치성은 한국의 이성산성과 매우 흡사함을 보이고 있으며 백제인이 직접 건축했거나 건축 감독을 했을 것으로 일본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5억엔을 들여 8각 건축물을 복원했다.

   
  기쿠치성에 복원된 8각 건물
 

이어 일본 야오이(BC 3C ~AD 2C)시대의 최대 유적인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을 방문해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 과정과 유물의 관리 및 문화재 복원 시스템에 대해 벤치마킹하는 기회도 가졌다.

   
  요시노가리 역사공원
 

탐방 4일째, 가야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건너와 만들었다는 이도국 역사박물관, 박물관의 유물은 한눈에 보아도 한반도의 유물과 흡사했다.

상당량의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관람자로 하여금 가야민족이 일본으로의 입성을 추정하게 하는 한반도와의 항로지도와 무덤 및 발굴현장의 일부를 박물관내에 복원해 놓았다.

또, 직경이 46.5cm나 되는 동경(동으로 만든 거울)을 통해 우수했던 한반도의 문화를 다시금 실감하게 했다.

이어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 정부가 신라. 당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으로 추정되는 수성을 방문했다.

수성의 규모는 길이 1.2km며 폭80m, 높이14m로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 쌓은 토성으로 바다 쪽을 향해 폭60m, 깊이4m의 호를 파 물을 저장해 적의 침입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이어 떼제부를 방문한 일행들은 1,300여년전 규슈 전체를 다스렸던 관청 자리를 돌아보고 그 규모에 놀랐다.

   
  떼제부 관청 자리
 

떼제부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일본이 파견한 원군이 대패하자 이 지역에 관청과 수성을 쌓고 뒤쪽으로 시오지산에 대야성을 쌓아 외침에 대비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열도 전반에 걸쳐 한반도에서 전해진 각종 유물과 건축양식 등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탐방에 참가한 일행들은 이성산성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하남시민 전체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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