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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고골초등학교(하남시 춘궁동) 운동장에서 제20회 ‘고골잔치’가 개최되었다. 고골잔치는 고골주민은 물론 출향민들이 참가하는 잔치이다. 이 대회는 올해가 제20회이지만 1970년대 초부터 시작을 했기 때문에 역사는 약 40년이 된다.
‘고골’은 하남시의 행정동 중 춘궁동, 항동, 상사창동, 하사창동, 교산동 등 5개 동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고, 고골 내의 자연마을은 12개 마을(궁안, 행길이, 성산동, 버구리, 나무길, 황골 오야골, 법화골, 샘골, 중촌말, 골말, 샘재)이다. 한자로는 古邑(고읍)으로 쓰며, 고읍은 ‘옛 고을’ 또는 ‘고 고을’이라는 의미이며 이것을 줄여서 ‘고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고골’은 역사학자들이 백제초기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비정(比定)하고 있으며, ‘하남시(河南市)’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골잔치는 12개 마을이 적당히 조(組)를 짜서 벌이는 주민체육대회이다. 그런데 일반 체육대회와 같은 경기종목인 줄다리기, 400m 계주도 있지만 농악놀이, 짚신삼기, 제기차기, 등이 이채롭다. 그리고 효자·효부도 심사, 선정해서 표창하는데 올해는 문옥자씨(궁안 마을)가 효부상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전통혼례식’을 보존, 재현하고 있는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안창환씨(나무길 마을) 내외가 신랑·신부로 참가하였다[金婚式(금혼식) 기념]. 안씨 내외가 신랑·신부로 단장하고,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식장에 입장, 주례자의 진행에 따라 대례(大禮)를 치렀다. 이번 고골잔치의 압권(壓卷)은 전통혼례식이었다.
고골잔치는 주민체육대회인데 “왜 ‘고골잔치’라고 하는가?”하고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다. ‘잔치’의 사전적인 의미는 ‘경사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이다.
우리민족은 1년 중에 설과 추석을 가장 큰 명절로 쇤다. 명절 때면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거의 다 고향으로 모여 차례(茶禮)를 지내고 성묘(省墓)를 한다. 그런데 추석은 운동경기를 하기 좋은 계절이라 ‘궁안’마을 청·장년들이 추석 때면 동네 운동장(고골초등학교)에 모여 ‘빼또치기’[배트치기], 동네축구 등을 하다가 고골주민체육대회로 확대하게 된 것이 ‘고골잔치’의 시발점이다. 1970년대 초에 이 체육대회를 처음 발기한 조성윤 전 경기도 교육감(그 당시 선생님)께서 ‘고골잔치’라고 명칭을 붙이자고 제안하여 주민다수의 찬성으로 채택하였고, 아울러 대회기(大會旗)의 도안도 손수 디자인 하였다.
이 체육대회는 단순한 체육대회가 아니고, 경기종목에서 보듯이 고골주민들이 하루, 한마당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놀이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고, 단합을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체육대회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 대회를 처음 실시할 때인 1970년 대 초에는 마을마다 음식을 만들어 자전거 및 리어카에 싣고 와서 마을단위로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그 때 운동장 가에 마을단위로 천막을 치던 위치는 오늘날까지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경제성장이 되면서 음식내용이 풍부해졌고, 운반수단이 리어카에서 경운기로, 다시 소형트럭 및 승용차로 바뀐 것이다. 이제는 참가자들이 승합차 및 승용차로 오기 때문에 주차문제가 어려움으로 대두되었다.
이 잔치는 주로 추석 다음날(추석연휴 중) 실시하였다. 필자는 추석 때면 귀향하므로 이 대회 때마다 참석하였다. 그리고 추최측에서 필자의 청년시절의 군부대 지휘경험(예비역 해병대위)을 인정해서인지 대회의 총괄 진행을 의뢰하여 제3회(1975. 9. 28), 제4회(1976. 9. 19.), 제5회(1977. 10. 2.) 및 그 후 몇 년 간(청년시절) 지휘하였다.
이 대회도 경기의 승부를 위한 체육대회이므로 경기진행 중에 팀 간에 의견충돌이 난 경우가 5~6회 대회까지는 간혹 있어서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7회 이후로는 없었다.
이 대회는 사건·사고 없이 화합의 마당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고골주민의 높은 의식수준을 나타내는 것이고, 고골주민의 자랑이고, 긍지이다.
추석은 신라 유리 왕 때 여인들이 두 패로 갈라서 길쌈대회를 하고, 진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잔치로 갚음을 했는데 여기서 '가배'란 말이 나왔고, 나중에 '가위'란 말로 변했으며, 그 후로 한가위(추석)가 되었다고 한다. 추석연휴에 실시하는 ‘고골잔치’는 우리고장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므로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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