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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장례진행은 장의회사(캐나다사람)에 의뢰했고, 장례식 의전절차는 빙부·빙모님이 다니시는 한인교회에서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순으로 진행하였다.
입관예배일시는 10일(금) 오후 7시 30분이었다. 장의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 외에는 상주 및 유가족도 장례식장에 못 들어오게 하고, 모든 관리는 장의사에서 하였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상주들은 밤을 새우고, 문상객들은 음주와 화투(고스톱)를 하는 등 철야하기 위한 놀이를 하면서 상주를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동안 서울의 모 종합병원의 장례식장에서는 흡연·음주와 화투를 못하게 하고 상주는 물론 문상객도 밤을 새우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정서에 맞지 않아 이용객이 감소해서 그 장례식장은 다시 전통적인 장례문화로 환원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습을 변경하는 것은 단기간 내에 되는 것이 아닌 듯싶다.
10일 오후 7시에 유가족은 상복(검은색 정장)을 입고, 입관(入棺)예배를 보려고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시신은 한국식 삼베 수의(壽衣)로 염습(殮襲)이 아닌 캐나다식으로 평상복인 정장(正裝)에 안면(顔面)은 화장을 해드려 주무시는 것 같고, 이미 캐나다식관(棺)에 입관하였다. 관뚜껑은 두 부분으로 되었는데 상반신쪽은 열어놓아 조문객들이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오후 7시30분부터 목사님의 집례로 입관예배를 보고, 이어서 조문을 받았다. 조문객들은 주무시는 것 같은 빙부님의 상반신을 보면서 조문을 하였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조문객에게 시신을 공개하지 않고, 유가족에게도 염습하기 전에만 잠시 공개를 하는데 이곳 캐나다 교포사회는 한국과 캐나다식 장례문화를 혼용해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므로 시신을 공개하는 것이었다.
토론토지역에 거주하는 필자의 군동기생 2명[김씨, 예비역 해병대위, 전 캐나다동부지역 재향군인회장, 연대졸(延大卒)/ 최씨, 사업, 예비역 해병대위, 고대졸(高大卒)]은 처음 캐나다에 이민와서 상가에 조문을 할 때 “시신을 보고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장례식때마다 보니까 그런 기분은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입관예배에 이어 조문객들의 조문이 끝나고, 옆방에 준비된 음식을 조문객들에게 대접하였다. 식사 후 조문객들은 모두 갔고, 유가족도 모두 집으로 오고 장례식장은 문을 닫았다.
11일(토) 오전 10시 30분 목사님의 집례로 발인예배를 보고, 이어서 조문을 받았다. 조문이 끝나고 발인(發靷)할 때 관의 뚜껑을 닫았다. 관을 올려놓은 관대(棺臺, 높이 약 1m)는 밑에 롤러가 달려서 운구하는 사람들이 관을 들지 않고, 관대를 밀면서 영구차(캐딜락) 앞까지 이동한 후 영구차에 옮겨 실을 때만 관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출발하여 장지인 브램프톤(Brampton)시(市)에 메도배리(Meadowvale) 공동묘지에 도착하였다. 유택(幽宅)은 전에 구입해 놓은 것이고, 면적은 8㎡ 였다. 묘지관리소에서 이미 광중(壙中)을 파놓는 등 하관준비를 해놓았다.
12시에 목사님의 집례로 하관예배를 보고, 헌화, 하관하고, 취토(取土)하였다. 이곳 묘는 우리나라 처럼 봉분(封墳)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평장(平葬)이다. 따라서 비석을 세워놓지 않으면 묘 위치를 찾는 것이 불편한 상태다.
얼마 간 있다가 유족들은 슬픔을 달래면서 묘지를 떠났고, 이어서 식당(뷔페)으로 옮겨 조문객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였다. 삼우제날 유가족들이 성묘(省墓)하였다.
캐나다 한인교포사회의 장례식은 한국식도, 캐나다식도 아닌 혼용장례문화였다. 캐나다에 거주하자니 한국과 캐나다 관습을 혼용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끝.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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