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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잔재(殘滓)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모레가 이슬이 내리고 가을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이다 보면 이제 여름도 지나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올 여름은 왜 이리 덥고, 짜증나고, 길기도 하느냐고 푸념을 하였다.
올해 8월은 예년보다 무더웠고 비도 더 많이 내렸다고 기상청관계자가 밝혔다. 아무리 더워도 광복절이 지나면 한풀 꺾이는 것이 경험칙이었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솥에 넣고 푹 삶듯이’ 더위가 기승을 부렸으니 유별난 여름이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지구 온난화에 따라 아열대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현상들이 앞으로 물밀듯이 닥쳐오지 않겠는가.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미래를 예측하고, 각오 또한 새롭게 하는 기회도 되었다.
지난 여름에는 이 나라를 뒤흔들다시피 하는 사건과 이벤트들이 우리들을 더욱 무덥게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의 발표와 연기,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경선, 아프간 한국인 피납사태 등으로 국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사건은 당혹, 걱정, 분노, 짜증 등이 뒤섞인 여름날의 파노라마였다. 7월 13일, 아프간의 탈레반에게 분당 샘물교회의 봉사단원 23명이 납치되었다. 탈레반은 ‘프로’답게 다짜고짜 2명을 살해한 후, 살벌한 협박을 밀었다 당겼다 하여 온 국민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42일 만인 8월 31일, 우여곡절 끝에 피납자들이 석방되었지만, 그 과정에 우리들의 애간장은 녹아버린 느낌이다.
그 여름, 하남시에서 벌어졌던 일들도 시민들을 너무 무덥게 만들었다. 시장 및 시의원들을 상대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 대한 절차상, 법적 타당성 등을 놓고 가처분 신청· 헌법소원· 고소· 고발 등 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장치들을 총동원하여 치열하게 싸운 계절이었다. 이제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9월 20일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소환투표에 대한 시민의 선택이 모든 것을 판가름하게 된 것이다.
그 길고, 무더웠던 여름을 거치면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새로운 모습으로 성숙해가며, 전열을 다시 정비해간다. 그 계절이 없다면, 여름이 여름답지 않다면 성숙에 따른 결실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 존재의 의의가 있고, 인과(因果)가 연결된 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앞으로 기후변화는 물론이지만, 정치현상이나 사회풍토에 있어서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 그 것이 비록 생소할지라도, ‘여름’을 거치는 동안 우리들의 것으로 융화된다. 그 진통 때문에 여름 보내기가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끝이 안보이던 계절도 사라져 가면 왠지 허전하더라는 것이다.
초가을의 밤풍경을 즐기고자, 미사리 강가를 걷노라면 숱한 불빛이 명멸하는 중에도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호흡을 길게 들이키며 다시 한 번 강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천재’로 불리던 가수 송창식(宋昌植)의 노래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딩동댕 지난 여름.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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