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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한국전쟁의 추억
  •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 승인 2007.06.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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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7월호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등생 38%가 “6·25는 조선시대 전쟁”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7개 초등학교 3~6학년 학생 36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라고 한다. ‘통일교육’이 강조되면서 6·25전쟁과 관련된 단원이 사라지고, 공산군의 침략에 의한 6·25전쟁의 참혹상을 소개하는 내용도 생략됐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누구인가,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등의 정체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어찌 조국애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모자란 놈이 군대 가서 썩는다.’라는 풍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1948년 1월, 남북한 총선거를 위하여 UN한국위원단이 파견되었지만 북한은 위원단의 입경을 거절하였다. 당시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당은 ‘반동분자’의 처단과 체제정비 등으로 정신이 없는데다가 오직 ‘적화통일’(赤化統一)일 뿐이지 총선거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별 수 없이 UN한국위원단은 선거가 가능한 ‘남쪽’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남쪽은 남노당의 극렬한 선거 방해공작, 일부 정치세력의 남북협상과 미군철수 주장 등으로 혼란이 극(極)에 달하였다. 그러한 산고(産苦)를 겪으며 1948년 8월 15일, 우리 대한민국은 태어났다. 그러자 ‘북쪽’에서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고 선포하였다. 

정부수립 두 달 만인 1948년 10월 남노당계열의 군인들이 여순반란사건(麗順叛反亂事件)을 일으켜 이 나라는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틈타고 이상한 세력들은 국회에 미군철수결의안을 올리는 등 기획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근간(根幹)을 흔들어댔다. ‘열 받은’ 미국은 1949년 6월 28일 미군철수를 완료하였고, 7월에 북한은 남한에 ‘9월 총선거’를 제의하여 우리를 헷갈리게 하였다. 한 걸음 더 나가 미 국무장관 에치슨(Acheson, D. G.)은 1950년 1월에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에치슨 라인’을 발표하였다.

같은 민족끼리 왜 싸우겠는가, 우리는 하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단 꿈’에 취해 있을 때 북한은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남쪽의 민족들을 기습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이었다. 5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해온 정예군과 장비를 총동원하여 남반부를 한 입에 삼키려는 목적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 동안에 국군 150만, 미군 16만, UN군 2만, 북한군 63만, 중공군 93만 등 수 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민간인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째서 그들은 ‘평화적으로’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를 거부하다가는,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9월 총선거를 제의했을까. 어째서 그들은 우리를 안심시켜 놓고는 ‘무력으로’ 결딴내려고 했을까. 통일교육 운운하며  얼렁뚱땅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6·25의 추억’을 반추(反芻)해본다.  

곽근홍 교차로저널 발행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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