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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제52회 현충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날 국립묘지(서울 동작동)를 40년 째 참배하고, 전우들의 명복을 빌었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에 970회의 외침을 당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사이에 끼어서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면도 있지만 우리국민 스스로 국방의 의지가 박약했던 면도 있다. 그 역사적인 면을 살펴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근본적인 원인은 병역제도의 문란 때문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에 따라 16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는 정규군과 보인(保人-정규군에게 경제적인 보조를 하는 사람)으로 편성했다. 그리고 병역면제자는 ‘60세 이상과 불치병자, 장애인, 병든 부모와 90세 이상 부모를 모시는 아들’ 뿐이었다.
규정이 이러한 데도 사대부들은 병역담당 관리들과 결탁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병역에서 빠졌다. 그리고 관직에 종사하는 동안은 병역이 면제되었고, 성균관(成均館)·사학(四學)·향교(鄕校)의 학생도 면제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란이 발생했을 때 국방이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에서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와 상륙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언론보도로는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병역특례비리문제로 검찰(서울 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고, 장관급인 K모 위원장의 아들도 유사한 일이 검찰에 적발되었다고 한다. 또한 검찰에서 병역특례업체 200여 곳의 비리여부를 조사한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는 국가존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국방문제에 있어서 그 기저(基底)가 흔들리는 병역비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가?
월남전 당시 정·재계의 실력자였던 K씨가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고(병역기피) 미국에 유학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진노(震怒)해서 K씨가 아들을 귀국시켜 군에 입대 후 월남전에 참전한 일이 있다. 국군통수권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예를 본다.
존 맥케인(John MaCain) 미상원의원은 과거에 미해군 조종사로 월남전에 찬전(당시 소령)했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월맹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는 주월 미군 및 전(全) 아시아지역 미군을 지휘하는 미태평양지구사령관이었다. 그래서인지 월맹에서는 그를 석방시키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맥케인은 국제법에 포로는 포로된 순서로 석방하게 되었는데 내가 먼저 석방될 수 없다, 포로된 동료들과 같이 석방되겠다면서 조기석방을 거절했다. 그래서 포로생활 5년 만에 석방 된 사람이다. 참으로 미국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발휘한 사람이다.
그는 현재 미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야말로 막강한 태평양지구사령관의 아들일지라도 참전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건만 ‘맥케인의 이야기’가 그 당시 우리사회에서 화젯거리로 등장했던 것은 “돈 없고 빽 없는 순진한 농민과 서민의 아들들만 전쟁나면 ‘총알받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구사회가 선진국이 되었고 또한 선진국을 지탱해 온 것은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솔선수범정신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튼튼한 국방 및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첫째 사회지도층의 병역의무에 대한 솔선수범정신을 고양토록 하여 국민개병원칙을 관철시켜야 하고, 둘째 병역비리범죄 연루자는 가중처벌은 물론 공직취임을 제한해야 하며, 셋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군통수권자가 병역문제에는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호국정신의 발로는 우리국민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국가는 몸을 바치지 않고는 지킬 수 없다는 사고(思考)가 체득되도록 하여야 한다.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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