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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와 송씨 부인의 설화의미는<김종규> 남한산성 청량당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때  삭토기법으로 많은 부분을 만들었으며 협곡이 있는 곳은 판축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주장성의 성지는 광해군때 남한산성을 국가보장지로 정하고 인조2년(1624)에 총융사 이서에 명하여 토성을 석성으로 쌓았다. 

일반 민중과 승려들의 참여로 2년 후인 1626년 11월에 완성되었다. 이 성역을 쌓을 때 진실을 바탕으로 생긴 것이 이회장군과 송씨의 설화이다. 산성축성의 총 책임자는 이서이고, 서북성은 각성 벽암대사가 승병들을 이끌고 쌓았으며 동남쪽은 이회가 나누어 쌓았다. 

이회의 출생에 관해서는 세종의 다섯 번째 아들인 서자 밀성군의 5대손이라는 이야기를 밀성군파의 후손이 전해준 이야기다. 그는 인조3년 축성도감으로 임명되어 남한산성을 쌓았다는 것이다. 

청량산이 만들어낸 청량당은 역사적으로 산성축성시의 설화와 나라의 한분인 대선사 도총섭 벽암대사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회장군의 가슴저린 사연을 남겼으니 참수당한 이회의 삶을 아쉬움이나 실망은 민간신화와 생동하는 사연과 만나게 하며, 시대적 배경과 물체의 상징성을 가지고 매당나무, 매당제, 응봉 등의 설화를 뒷받침 해주고 이회와 송씨부인이 제기하는 그 시대의 모순이 현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를 통해 우리 속에 있는 정성과 삶의 본질을 나타내며, 그런 잘못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

그 이후 주민들은 홍수피해를 막아주는 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이회와 송씨부인의 설화 속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축성을 견고하게 쌓아 나라를 굳건하게 했음에도 모함에 의해 참수되어야 했던 남편의 원한을 풀어 주려고 한 송씨부인의 처절한 안타까움이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송씨부인은 남편을 따라 한강변의 저자도에서 물에 빠져 죽게된다. 그 후  송씨부인의 영혼이 무고한 사공과 사람들을 수장시키니 그의 혼을 모셔 제사지낸 이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북쪽의 북장대지 치의 밑에 성 돌에 自北片(북쪽편), 監役(감역,축성감독), 切衝(절충-적을 막는다.), 李筬(이성)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다. 

벽암각성대사는 공사를 완공하였는데 이회는 사제를 팔아서 경비를 충당하며 축성하여도 지세가 험하여 성 쌓기가 늦어졌고, 경비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공사경비를 주색에 탕진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이회는 구차한 변명 없이 “내 죄가 없다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참수 당하였다. 

그 때 홀연히 매 한 마리가 나타나서 시신을 바라보다가 수어장대 동쪽 바위에 앉아 발자국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 주위에는 그 당시 매가 날아와 앉았다는 매방제, 매봉, 응봉 등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고 전한다.

축성공사 한 성패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회장군이 쌓은 성은 견고하고 과학적인 축성기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어 무고였음이 드러나고 이회부인 송씨는 축성자금을 3남 지방으로 가서 마련하고 돌아와 송파나루에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되어 모금한 쌀을 통곡하며 강물에 뿌리고 죽음을 선택하니 이후로 이곳을 쌀섬여울이라고 불렀다.

그 후 안개 낀 날이나 저녁무렵이면 여인의 곡성과 환영에 이끌리어 뱃사공이 바위에 부딪혀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나 마을에서 동쪽 강 언덕에 부군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니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관에서도 화주당이란 당집을 세우고 영혼을 위로하였다. 

이 설화는 남한산성 축성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바위와 한강, 매의 습성을 잘 조화시켜 자연과 역사와 설화를 일치시키는 설화에 의미가 있다. 

이회장군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민중들의 생각은 위정자들의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있기를 기대함이 이야기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루어진 상태에서 권력층에 대한 불만과 실망을 설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하였다.

설화는 민간신앙으로 그 대상을 삼고 있으며 실제로 지금도 남한산성 문화행사 때 청량당에서 신을 모셔다 대동굿을 한다.

남한산성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지켜본 민중들이 위정자들에 대한 준엄한 질타를 하고자 함도 있었을 것이고, 역사 가운데에는 역사적으로 드러난 일들과 가리워진 일들 속에서도 올바른 자세로 맡은 임무에 충실했던 이회와 개혁적인 축성모금을 한 송씨부인의 행위를 통해서 그 시대의 훌륭한 일을 한 여인으로 조선사회 때 생활의 일면을 보여준 충의로운 여인상을 보여 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의 설화가 만들어진 동기와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며 이회의 충직한 삶과 그 자세, 송씨부인의 의로운 행위등은 본받아야 할 사회상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 이후에도 지역 신으로 홍수를 막아주는 대감으로 변하고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진정어린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곳이 청량당과 매바위일 것이다.

설화의 공간과 역사의 공간으로 시대의 변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터전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현장은 현실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지침의 장소로 세월 속에 싸여진 일들을 민족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곳이다. 

<김종규 문화해설사>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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