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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울이 지금보다 더 춥게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옷도 낡았고, 집도 지금처럼 난방시설이 없는 집인데다 어디를 가나 추웠기 때문에 더 춥게 기억되는지도 모릅니다.
눈이 발목보다 깊게 쌓인 겨울날, 유난히 엄격하셨던 담임선생님께서 미술준비물을 검사하셨습니다. 노트나 크레용, 물감, 피리 등을 챙겨오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 때, 한 미술 시간엔 크레용을 준비해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크레용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무지개가 화려하게 그려진 36색 '왕자표' 크레파스를 갖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꿈이었습니다. 문방구에서 쉽게 파는 12색깔의 크레용은 크레용이지만, 왕자표 크레용은 크레용이 아닌 크레파스였습니다.
제 짝은 36색짜리 크레파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크레용과 스케치북을 준비해 오지 않은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해서 눈밭에 그대로 엎드려 뻗쳐를 시켰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이 제 자리에 오실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눈밭에 나가서 주먹을 쥐고 엎드려 뻗쳐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내 짝처럼 왕자표 크레파스를 갖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제 짝꿍이 그 화려한 왕자표 크레파스를 모두 반으로 뚝 뚝 분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반토막이 된 크레파스 36개를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당시엔 친구가 빨간색이나 노랑색 크레용 하나를 빌려가서 조금 많이 쓰기만 해도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거리가 되곤 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저를 위해서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왕자표 크레파스를 반토막 내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때론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작은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제 짝으로 부터 받았던 왕자표 크레파스 만큼 감격적이고 가슴이 울컥했던 선물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남과 나누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만지기도 아까웠던 왕자표 크레파스를 기꺼이 반토막으로 잘라주었던 친구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그 마음이 그립습니다.
지금까지 내 가슴에 남아있는 그날의 선물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아름답고 영원한 선물로 남아 있습니다.
박성균 칼럼니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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