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전은 도미의 신분을 편호소민(編戶小民)이라 하였다. ‘편호’는 호적을 말함이니 ‘편호소민’은 호적에 오른 평민이란 뜻이다.
그의 신분을 이처럼 비하(卑下)한 것은 그 아내의 절행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적인 꾸밈인 듯하다.
위작(僞作)의 근거를 원본의 내용에서 확인하여 보자.
첫째 당시의 상황에서 “벽촌의 촌부가 의리를 안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 “두메에 묻혀 사는 아낙네의 절행이 널리 알려져 칭찬이 자자하였다”는 내용도 현실성이 없다.
둘째 도미전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왕과 도미처 사이에서 벌어진 공방(攻防)의 승부수는 왕의 유혹을 지혜롭게 모면한 도미처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 공방의 과정에 등장하는 조역들이 왕을 대신한 신하와 도미처를 대리한 여종(婢女)이다. 만일 도미가 ‘편호소민'이라면 어떻게 종을 여러 명 거느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편호소민’과 ‘종을 거느림’은 어느 한 쪽이 거짓꾸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자가 사실이 아니면 도미전은 그 스토리가 파괴되지만 ‘편호소민’이란 신분은 다른 신분으로 바꾸어도 큰 지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조 때에 간행된 『삼강행실도』에서는 “도미라 사은백졔나라 벼 사" 이라고 하여 도미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세종대왕이 지은 『삼강행실도』에는 벼슬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의 원문에 나타나는 ‘편호소민’을 삭제하고 오히려 ‘벼 사’ 으로 바꾸어 놓았음은 번역자 역시 도미전의 전체적인 구성과 그 내용으로 보아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부합하도록 하기 위하여 생략된 듯한 대목이나 위작인 듯한 부분을 수정 보완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도미가 백제의 ‘소민’이었다면 벽촌에서 사는 촌부가 입궐하여 느닷없이 ‘아내’를 걸고 어떻게 장기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이는 필시 조석으로 왕과 대면하는 벼슬자리의 고관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상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건대 도미는 ‘편호소민’이 아니었다. 그 후예인 성주 도(星州 都)씨의 족보를 비롯한 여러 문헌과 항간에 구전되어 오는 속설과 같이 도미는 정승 반열의 신분이었음이 분명하다.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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