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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설화 시리즈> '도미전의 전설화 시기'(5)도수희 교수의 도미설화

도미가 체형을 당한 후 배에 띄워져 떠내려가다 도달한 섬이 천성도(泉城島)이며, 망명하여 여생을 마친 곳이 고구려의 산산(蒜山)이었다.

그런데 이 지명들은 백제 시대에는 ‘얼매곶(於乙買串)’과 ‘매시달(買尸達)’이었다. 고구려는 장수왕이 남침하여 백제의 영역을 점령한 이후에 지명을 대대적으로 개정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고구려가 백제 중부 지역의 지명을 개정한 시기를 장수왕이 강점한 시기(서기 475년)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 시기가 무작정 늦춰질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라가 고구려의 점령 지역에서 10군의 땅을 약취(略取)하고 북진한 시기가 진흥왕 12년(서기 551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라와 백제가 북진하여 그들의 영토를 확대하거나 수복을 도모하기 이전의 최강 고구려가 최대 영역을 확보한 안정된 시기에 백제의 고유지명이 개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문자왕 때(492~518)에 ‘얼매곶’이 천정구(泉井口)로, 매시달이 산산(蒜山)으로 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泉井口는 후에 泉城島(천성도)로도 불리었거나, 아니면 천정구의 부근에 있는 섬 이름이 천성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지명에 동일한 ‘泉’字가 접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미전의 배경 지명인 泉城島와 蒜山이란 지명이 발생한 시기 이후 즉 문자왕 말년(518) 이후에 그것의 전설화 또는 전기화가 이루어졌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흔히 지명에 붙여진 노래나 전설의 이름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지어진 시대를 알리는 징표로 남는다.

가령 정읍사,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미량아리랑, 정선아리랑, 양산도가  등도 앞에 접두한 지명이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경우와 같다. 이처럼 ‘도미전설’이나 그 전기는 ‘천성도’와 ‘산산’이란 지명이 발생한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봄이 타당한 것이라 하겠다.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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