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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설화 시리즈>'도미전설’의 분포(3)도수희 교수의 도미설화

도미전설은 여러 고문헌에 등재되어 전하기도 하고, 구전(口傳)으로 전국의 각 지에 유포되어 있기도 하다. 여러 곳에서 구전되고 있다는 도미전설로는 〔전설1〕: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蘇城里)의 전설, 〔전설2〕: 경남 진해시 청안리(晴安里)의 전설, 〔전설3〕: 경기도 하남시 동부면 창우리(倉隅里 속칭 창모루)의 전설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설1〕: 1990년에 모 교수가 충남 보령군 오천면에 낚시하러 갔다가 소성리에서 수집하여 중앙 모 일간지에 발표한 도미전설이다. 그 곳에 도미항(道美港)이 있고, 도미부인이 남편을 그리던 상사봉(想思峰)이 있고, 미인도(美人島)가 있다는 등의 근거를 들어 도미부부의 살던 곳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도미항․상사봉․미인도'를 도미와 결부시켜 도미부인이 태어난 곳이 바로 그 곳이라고 추정한 주장은 『삼국사기』의 원문에 나오는 지명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데서 빚어진 오해이다.

이는 전공영역을 벗어난 위치에서 흔히 범할 수 있는 억측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이 주장은 너무나 허무맹랑(虛無孟浪)하다. 그 원본의 내용에 강진(江津)은 있어도 항구(港口)는 없고, 천성도(泉城島)는 있어도 상사봉과 미인도는 없다. 찾아보면 전국 곳곳에서 ‘도미항’과 ‘상사봉’과 ‘미인도’가 발견되는 데 동일 지명마다 모두 ‘도미전설’의 발생지로 보아야 하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전설2〕: 『삼국사기』의 도미전에 나오는 지명 천성도(泉城島)와 경남 진해의 가덕도(加德島)의 마을 이름인 천성도(天城島)가 음상(音像)이 동일하기 때문에 형성된 지명전설에 불과하다.

아마도 해안의 청안리에 도미묘가 전해지기 때문에 발생한 전설일 것이다. 도미전의 마무리 대목이 “고구려에 가서 살았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곳 남단 해변에 도미묘가 있게 되었는가의 의문을 풀 수 없다.

그 당시에는 그곳이 신라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곳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출항하기에 앞서 도미의 묘에 제를 올리고 떠나는 의식을 전통적으로 행하여 왔다. 어쩌면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가묘가 아니었나 싶다.

〔전설3〕: 창우리(창모루)에 형성된 전설이다. 이 전설은 ‘도미진'(渡迷津ㆍ豆尾津ㆍ斗迷津)이란 지명이 도미와 음상이 같기 때문에 그 곳을 도미전의 배경지명 중의 하나로 추정한다.

두 눈동자를 잃은 도미가 버려진 강변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에 전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사건이 발생한 한홀(廣州>河南市)의 춘궁동(고골) 궁안(宮內)리로부터 약 5Km 떨어진 강안(江岸)이기 때문에 가장 믿음직하다.

아마도 도미부인의 열녀 이야기는 백제의 민간에 암암리 유통되어 오다가 백제가 멸망한 이후 신라의 통일기를 거쳐 구비전승 또는 문헌 전승되어 오던 것을 고려 시대에 수집.정리하여 『구삼국사기』의 열전에 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다시 김부식에 의하여 『삼국사기 열전』에 도미전으로 옮겨진 것이라 하겠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등에 약간 다른 내용으로 다시 등재되었다.

그리고 민간에 구전되어 온 것들도 또한 그 원형이 상당히 훼손된 내용이 되어 전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전설3〕을 『삼국사기』의 ‘도미전’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도미전설’에 얽힌 여러 문제를 풀기로 한다.

윤제양 기자  yjy@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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