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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설화 시리즈>한국 열녀의 표상(1)도수희 교수의 도미설화

여인이 정절을 지켜져야 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그 당위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기는 없었다.

여인의 정절이 가장 큰 덕목이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미덕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날로 더욱 타락해 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시피 불륜 관계의 기사가 매스컴의 머리를 차지하고, 이혼가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해 가고 있다. 이런 절박한 시점에서 백제 시대의 빼어난 열녀 이야기를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다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열녀 하면 머리에 우선 춘향이가 떠오른다. 춘향은 열녀의 상징일 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춘향은 고소설의 주인공일 뿐 결코 실존 인물은 아니다.

한낱 소설의 주인공에 불과한 춘향은 열열이 추앙하면서 실존 인물인 백제의 열녀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심하였다. 마치 진 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처럼 값진 이 열녀 이야기가 애석하게도 기나긴 세월 속에 애처로이 비장(秘藏)되어 왔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열전 제8)에 도미전(都彌傳)이 있다. 이것이 바로 청사에 빛나는 ‘백제 열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최근(서기 1990년)에 모 교수가 충남 보령군 오천면 소성리에서 ‘도미전설’을 수집하여 중앙의 유력한 모 일간지에 발표한 일이 있다.

이 글은 열전의 주인공인 '도미 부부'의 고향(또는 거주지)이 충남 보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황당(荒唐)한 주장을 철석 같이 믿고 보령시가 열녀비각을 짓고 그 안에다 열녀 도미처(都彌妻)의 영정을 모시었다.

물론 열녀 정신을 선양하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송덕비를 세우고 전각을 짓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다만 ‘도미전’이 『삼국사기』의 내용을 근거로 충실하게 소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최초의 기록인 『삼국사기 도미전』(서기 1145년)의 내용으로 보아 주인공들이 살던 곳은 한홀(廣州>河南市) 지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뮤직컬 도미전’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이 제작 발표될 것이다. 그 동안 잘 못 알려진 도미전의 내용이 바르게 반영될지 자못 궁금하다.

먼저 ‘도미전’의 내용은 허구가 아닌 백제 시대에 있었던 실화(實話)란 점이 부각되어야 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원문대로 가감(加減)없이 역사적 사실과 배경이 충실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백제 열녀 이야기가 오늘의 미담(美談)으로 되살아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겨레의 자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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