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신문 황민호 기자
흔히들 제가 사는 곳을 ‘시골 촌동네’라고 합니다. 아직 옥천이라 하면 어느 지역에 속해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무렴요. 인구 5만 7천명(웬만한 대도시의 한 동 수준입니다)의 조그만 고장 옥천을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저는 옥천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전에서 쭉 살다가 옥천에 이사 온 지 3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전에는 옥천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옥천이 너무 좋습니다. 신기하죠? 아시다시피 저는 풀뿌리 옥천신문 취재기자입니다. 이제 3년차를 갓 넘었죠.
전공은 신문방송학을 했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제 꿈을 정했습니다. 지역 신문기자를 꼭 하고 싶다고 마음 속에 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어렵지 않게 옥천신문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비록 경쟁률이 2:1밖에 되지 않았지만, 합격할 그 당시만 해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어떤 방송국과 신문사에 합격한 것 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사람 냄새, 흙 냄새, 촌티 풀풀 나는 시골 기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을회관 경로당에서 고스톱 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주름진 손도 살며시 잡아주고, 작은 운동장에서 웃통 벗고 먼지 펄펄 나게 뛰는 아이들의 땀방울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널따란 논두렁에서 생명의 예술을 펼치는 농부의 두툼한 손과 하늘거리며 춤을 추는 자연과 맞닥뜨리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 옥천신문사에는 옥천에서 태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모두 옥천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향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식구는 모두 10명입니다. 모두 가족 같습니다. 저는 맨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학교 동아리 같이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작은 지역 옥천에 살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대부분의 제 또래 친구들과 후배는 물론이고 어른들까지도 이렇게 묻습니다.
“민호야! 너 옥천에서 언제 나올거니? 이제 나올때도 됐잖아!”
시골은 늘 거쳐가는 장소였고, 탈출해야만 하는 장소였던 겁니다. 결국 힘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남아있는 시골 농촌,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닐까요? 저는 풀뿌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싶습니다. 풀뿌리, 뿌리가 없으면 꽃이 어떻게 피워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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