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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하산곡동 소재 미군부대(캠프 콜번)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데 이 부대(8만6천여 평)는 필자가 대학학부 다닐 때인 1964년부터 주둔했고(그 당시는 광주군 동부면 하산곡리), 주민들은 이 부대를 “미사일부대”라고 불렀었다.
이 부대가 처음 들어올 때 한국인과 미국인의 음주문화(飮酒文化)의 차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 양국인의 음주문화의 차이를 알아본다.
먼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음주문화를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4계절에 맞추어 식품의 발효문화가 발달하였고, 발효주(醱酵酒)로 오랜 세월 마셔온 대표적인 술은 막걸리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드시는 막걸리의 제조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쌀을 시루에 쪄서 술밥(酒飯)을 만들고, 이것을 맷방석 위에 펴 수분을 건조시킨 후, 누룩과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물을 붓고, 항아리를 이불 등으로 감싸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항아리에 용수를 박아서 떠내면 약주(藥酒)이고, 약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짜내면 막걸리다.
막걸리(알코올 도수 6∼7도)는 단맛·신맛·쓴맛·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있는 것으로서, 농경시대 땀 흘리며 일한 농민들의 갈증을 풀어주어 농주(農酒)로서 애용되어 왔으며, 술이면서도 건강식품이다.
약주와 막걸리는 한 항아리에서 태어났지만 약주는 쓸개를 해치는데 막걸리는 쓸개를 튼튼하게 한다. 조선시대 중엽 막걸리를 좋아하는 판서 한분이 있었다.
왜 좋은 소주와 약주가 있는데 하필이면 막걸리만 드시냐고 자제(子弟)들이 하자, 쇠(牛)쓸개주머니 3개를 구해오라 하고, 하나는 소주를 넣고, 다른 하나에는 약주를 넣고, 나머지 하나에는 막걸리를 담아 며칠 후 열어보니 소주 쓸개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었고, 약주 쓸개는 상해서 얇아져 있었으며 막걸리 쓸개는 오히려 두꺼워져 있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술을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생활의 윤활유 및 촉진제로 생각하고, 자기 잔을 어른께 드리는 것은 존경의 표현이며, 자기 잔을 동료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인정과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인식 때문에 수작(酬酌)문화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의 음주문화와 비교해보면 중국인들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중국인은 상대방의 술잔이 비워질 때 그 잔에 첨잔(添盞)을 할지언정 자기 잔을 돌리는 수작문화는 없으며, 상대방에게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인의 음주문화를 살펴보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술 마시는 곳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 정해진 곳에서 마셔야하고, 대부분의 야외에서는 마시지 못한다. 술집에서 마셔도 술을 상대방에게 권하지 않는다.
미군부대가 처음 들어올 때 신장리에서「○○공업사」를 하는 김○○씨(남, 60대)에게 미군부대의 어느 미군이 용접을 해달라고 의뢰하여 김씨가 용접을 하러 부대까지 갔다고 한다. 작업을 마치자 미군이 김씨에게 양주(조니 워커- 40도)를 한잔(작은 잔) 주니까 요게 뭐냐고 큰 잔에 달라고 하였단다. 김씨는 막걸리를 대접에 마시던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미군이 맥주잔에 얼음을 넣어 한잔 따라주니까 김씨가 다 마셨다. 미군이 놀라서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또 달라고 하여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고 한다. 이로 인해 김씨는 육체에 이상이 생겨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하남시 신장동. 이수일 씨의 전언).
음주문화가 다름으로 인하여 생긴 불상사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주, 지나치게 마시면 독주다”라는 우리의 속담은 진리이다.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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