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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변화의 물결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대이다. 전에는 기업이나 관공서에 전화를 안내하고 바꿔주는 교환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동화 되어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골라 수레에 싣고 계산대로 가면 점원이 상품에 부착되어 있는 바코드를 일일이 리더기에 갖다 대어 계산을 자동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바코드가 전자태그 방식으로 바뀌면 물건을 가득 실은 상태에서 수레가 리더기를 통과하면 계산이 단번에 완료된다. 이런 날이 온다면 마트의 점원 수가 현재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게 되는 사람은 몹시 당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국의 스펜서 존슨이 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 라는 책이 있다. 스니프와 스커리라는 생쥐와 헴과 허라는 꼬마 인간이 살아가는 가상 이야기를 우화로 다루고 있다. 각자가 행복과 성공의 상징인 치즈창고를 찾아 미로를 헤맨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거대한 치즈창고를 찾아낸다. 현실세계로 말하자면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직장을 얻은 것이다. 생쥐들은 매일아침 치즈창고에 도착해서 언젠가는 이 거대한 “치즈가 살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며” 치즈를 먹는다. 그리하여 치즈가 없어지면 새로운 치즈를 찾아가기 위해 운동화를 벗어서 끈으로 묶어 목에다 건다. 반면 꼬마 인간들은 치즈를 먹으며 “치즈를 가진 자는 행복하다”고 하며, 운동화를 벗어 던져 버리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즉 현실에 안주하며 내 직장은 구조조정이 있을 수 없는 철밥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창고에 도착하니 무한의 행복을 보장할 것 같았던 치즈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사무실에 출근하니까 구조조정이 되어 직장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생쥐들은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난다. 이에 반해 현실에 안주하고 운동화도 벗어 던져버렸던 꼬마인간들은 새로운 행복을 찾기엔 너무나 무기력했다. 비관과 원망으로 가득 찬 헴은 변화의 수용을 거부하고, 텅 빈 창고에 남아 있기로 결심한다. 즉 새로운 삶을 개척하지 못하고 노숙자 생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온갖 갈등과 고민을 하던 주인공 허는 버려두었던 운동화를 찾아 신고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선다. 허는 새로운 치즈창고를 찾아 가면서 “치즈창고는 하루아침에 살아진 것이 아니다. 치즈냄새를 자주 맡다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험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 주인공은 드디어 새로운 치즈창고를 찾는다.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운동화를 언제라도 신을 수 있도록 바로 곁에 두고 치즈를 먹는다.
중생대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던 공룡이 어느 날 갑자기 멸종했다. 공룡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룡의 멸종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환경의 변화를 얼마만큼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는지, 변화에 대해 안일한 회피와 방관의 자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지에 관해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너무 안주하려는 사람은 더 이상의 자기발전을 기할 수 없다.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안목과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길로 이르는 지름길이다.
조성민 칼럼니스트 cho288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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