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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광식교수 칼럼]생닭 묻어 끝날 일 아니다.
  • 권광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06.1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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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숲속 새소리 들리기 앞서 장닭 울음소리에 우리 집 새벽은 열린다. 그리고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 통을 챙기는 나의 아침일이 닭집에서 시작된다. 그곳엔 나만의 해우소(解憂所), 뒷간이 있어 일도 보고 명상시간도 갖는다.

나는 닭과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범상치 않는 소통과 소망의 세계가 있음을 알았고, 고향 만나는 추억을 회상하는 잔잔한 재미는 그 어디에 비길 바가 아니다. 먹이 찾아 종종걸음 하는 노란 병아리, 어느새 고놈들이 커서 낳은 뽀하얀 달걀로 어머니가 내 고무신 사오신날의 벅찬 기쁨, 추억은 잠시라도 아름답다. 설령 고단하고 힘든 세월이 있어도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추억들은 시간이 윤색되고 기억이 채색되어 가슴 설레고 오늘을 즐겁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그런 닭들이 산채로 묻히는 소동에 나는 그 어떤 공포가 엄습하는 느낌으로 몸서리가 쳐진다. 표독스런 폭력의 기운이 세상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돈독에 빠진 사람들의 앙칼진 소리가 번져가는 공포의 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생닭을 묻어서 질병은 끝나는 것일까? 더 크게, 더 많이, 더 빨리의 성장정책 - 진실에서 멀어질수록 잘산다는 부자전략을 택한 우리 농정이 저런 닭독감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은폐하고 갈 것인지. 닭독감, 광우병은 실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대응한 우리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간대임을 알리는 다급한 경고음이다.

양계농가의 시퍼런 멍은 어쩌다 재수 없어 맞은 철새들의 새똥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과연 철저한 과학적 검증결과인가? 그렇다면 철새들만 몰살시키면 닭독감도 시퍼런 멍도 다 없어질까?

돈독에 빠져 허둥대는 사람들에게는 씨잘데기 없는 말이고 뜬금없는 소리라고 퉁맞을지 모르지만, 질병예방의학 개척자 로버트 맥캐리슨은 “동식물의 질병은 토양의 건강과 직결된것이라” 했다. 유전자조작씨앗에다 화학비료와 농독약에 찌든 땅에서 나온 것들, 거기에 폐기물과 항생제, 성장호르몬이 범벅된 사료를 먹여 빨리 돈 빼내려고 보채는 곳에 건강한 닭이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투기놀음이요 사기 아닌가.

노동자 시인 정인화는 일찍이 오늘을 점치고 걱정을 했다.

부리를 잘린 채/ 죽을 수도 없는 쇠창살에 갇혀/ 밤을 빼앗겨 잘 수조차 없는/ 그 지옥의 공간에서 쏟아져 나온/ 닭알을 봅니다/ 아무래도/ 이 닭알에는 분노가 섞여있을 것이라는/ 얼마쯤 광기도 서려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이 닭알을 먹는/ 우리 인간도 나날이 분노하고/ 조금, 조금씩 미쳐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금 정부는 죽이고 파묻고 소독하는 진통제 투약처리로 이 환난을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자체면역성의 기둥 없이는 생존력은 무너지는 법. 어떤 생명체도 지옥방에서는 자기 면역성이 유지될 수 없다.

이제 농정은 앞으로 더 무서운 질병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축산, 영농방식의 장려정책을 바꿔야 한다. 특히 축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생명에너지 농업을 장려 확대하는 농정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농업이 다양성, 면역성, 생명성을 포기하면 곧 자살의 길로 빠져들어 가는 꼴이 된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루 영 박사도 “조류독감(AI)의 위험성은 야생조류에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가금류 산업 자체에 숨어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위기는 깨달음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강물 그것이다.

세상에서 지금과 미래까지 생명문제 이것만큼 시급한 과제가 또 있을까? 생명성 모심 없이 평화와 행복은 허공속의 빈말이 되고 말 것이다. 

권광식 칼럼니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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