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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조(志操)를 지킨 이장렴
  • 조성국 칼럼니스트
  • 승인 2006.12.2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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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왕족인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조선왕조 제14대 영조의 현손 남연군 구(南延君 球)의 넷째아들이며, 제26대 고종의 아버지이다.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렸다.

이하응은 1843년(제24대 헌종 9년)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지고, 도총관(都摠管) 등 한직(閑職)을 지내면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가 심하자 보신책(保身策)으로 불량배와 어울려, 파락호(破落戶)로서 궁도령(宮道令)이라는 비칭(卑稱)으로까지 불리며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하는 한편, 제25대 철종이 후사(後嗣)가 없이 병약해지자 조대비(趙大妃-헌종의 대비)에 접근하여 둘째 아들 명복[命福: 고종의 아명(兒名)]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다.

1863년 철종이 죽고 조대비에 의해 아들 명복이 12세에 제26대 고종으로 즉위하자 이하응은 대원군(大院君)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攝政)이 되었다. 이하응은 대권을 잡자 안동김씨의 주류(主流)를 숙청하고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패관리를 적발하여 파직시켰다.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 춘홍(春紅)의 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옆자리에 있는 금군별장[禁軍別將-조선 중기 이후 국왕의 친병(親兵)을 통솔한 무관직(武官職)] 이장렴(李章濂)과 시비가 붙게 되었다. 화가 난 이하응이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 일개 군관이 무례하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외상 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하며 호통을 쳤다.

이하응은 뺨을 얻어맞고도 할 말이 없어 술집을 뛰쳐나갔다.

이후, 이하응은 대원군으로 섭정하던 어느 날 이장렴을 운현궁(雲峴宮)으로 불렀다.

이장렴은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운현궁으로 가면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각오로 가족에게 유언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장렴은 “대감께서 지금도 기생 춘홍이 집에서 하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하신다면 이 장렴의 손을 이장렴의 마음이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 하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오른손으로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좋은 인재 하나 얻었다. 술상을 들이도록 하여라!”라고 하여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장렴이 돌아갈 때 흥선대원군은 하인들에게 “금위대장[禁衛大將-종이품(從二品)]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中門)으로 모시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이는 금위대장[금위영{(禁衛營)-한양을 지키던 영문(營門)}의 수장(首長)]에 대한 구두임명장(口頭任命狀)이었다.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대감 그때는 소인이 경솔한 짓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쇼!”라고 했더라면 이장렴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장렴은 권세에 눌리지 않고. 지조(志操)를 지켜 목숨을 구하고, 금위대장까지 되었다.

조성국 칼럼니스트  cho-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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