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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리는 외줄타기의 원조 마을”박식주씨 주장, “해방후 떡쿵내로 이사”

[광주] “1996년도 큰 딸이 공부하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광주군 엄미리 외줄타기 놀이’가 소개 돼 있어 엄미리의 옛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10년전 교육부가 발간한 고교 3학년용 국어교과서중 줄광대 관련 내용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에서 ㈜엄미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식주씨(58)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외줄타기 놀이’가 성행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다니면서 고증을 듣기 시작했다.

몇 사람의 고령 노인분들을 찾아서 ‘외줄타기 놀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으려 했지만, 워낙 오래된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중, 어떤 한 분이 이런 말을 들려줬다.

“엄미리에서 외줄 타던 곳이 바로 자네 집터 자리여!” 그 노인 분을 붙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박식주씨는 대략의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노인에 의하면 엄미리 635번지에는 매우 특별한 날에 ‘외줄타기 놀이’를 했다는데, 일제시대에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끌려 갔다가 살아서 돌아 온 사람들을 위한 잔치자리에 ‘외줄타기 놀이’가 등장했다는 것.

   
 
▲ 엄미리 외줄타기가 이뤄진 현장을 가르키고 있는 박식주씨.현재 배추밭은 당초에는 물이 괴어있는 습지였으며 이 위에 외줄이 설치됐다고 한다.
 

또한 강제징집 된 후 떠나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동네사람들이 이 장소에 모여 외줄 위에서 연기를 하는 광대의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면서 고달픔과 아픔을 잠시나마 잊었다는 것이다.

박식주씨의 옛 집터는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우물 밑에 있는 습지로 늘 물이 고여 있었는데, 이 위에 외줄을 좌우로 걸고 그 위를 외줄타기 광대가 지나가면서 흥겨운 ‘소리’를 했다고 한다.

박식주씨는 “노인분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일제시대가 끝 나고 해방이 되자, 외줄놀이 광대는 엄미리에서 현 광주시 송정동에 있는 ‘떡쿵내’ 동네로 이사를 갔다”고 전한다.

박씨는 엄미리 외줄타기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지난해 에버랜드에서 외줄타기 신동으로 불리는 15살 소년의 공연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고 한다.

“외줄타기 광대의 재담과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고수가 서로 대화 하면서 외줄 위를 앞.뒤로 이동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전통미와 긴장감이 함께 있는 민속예술이다”는게 박식주씨의 설명이다.

지난 1997년 11월. IMF가 시작되면서 온 국민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최초로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큼, 남 다른 통찰력을 지닌 박식주씨의 ‘엄미리 외줄타기 놀이’ 발견은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됐다.

“흥겹고 아름다운 우리의 외줄타기 연기가 본 고장 엄미리에서 복원돼 맥을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말하는 박식주씨는 “엄미리에서 전국외줄타기 경연대회를 개최 할 수 있도록 광주시가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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