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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있는 두 분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분은 공부 잘하고 착했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죽음은 한 순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한 분은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몇 개월 후에 죽었습니다. 두번의 수술을 거치며 때론 죽음을 예감하다가 때론 삶의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머리가 아프다고 한 지 8개월 만에 저 제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전 갑자기 십대 아들을 잃은 이 두 아버지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어이없이 잃은 것은 나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을 학교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셨습니다.
이미 내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없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나와 같은 비극을 맞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아버지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갑작스런 병으로 잃었습니다. 이 분은 아들이 죽고 2년이 넘도록 아들을 잃은 슬픔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그만 아들의 죽음을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권고에 화를 내며 '당신들이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느냐'며 크게 화를 내곤 했습니다. 생각 날때마다 아들 이야기를 하며 울곤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상황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의 죽음보다는 아버지의 반응에 더 마음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슴에 자식을 묻은 부모의 마음은 그 일을 당한 본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인생의 비극입니다. 설령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마 서로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는 서로가 다르게 느낄 것입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비극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같이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게 인생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계속 절망하며 슬픔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비극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인생은 자신에게 도전해 오는 일들에 대한 반응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일어나는 상황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 내가 침몰할 것인가? 그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것인가? 인생의 비극적인 면만 바라보며 좌절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이것은 반응과 태도의 문제입니다.
오늘 내 인생에서 내가 예상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나쁜 상황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 나쁜 상황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 상황에 대한 반응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박성균 칼럼리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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