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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는 성장만능 착시현상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 착시현상의 축심은 “경제성장”이라는 사회 주류의 상식이다. 걱정스러운 상황은 그 중심에 개발․성장 정책의 깃발로 착시(錯視)를 부추기는 정치인을 비롯, 지도층 인사가 또아리로 살 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 놈의 깃발은 하도 위세가 당당하고 탐욕과 이기심에 줄을 엮고 있어 딴 깃발은 얼씬도 못한다. 그런데 고 놈이 우리 사회 위기의 진원지요,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 세상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념은 불확실한 가정들로 부터 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한 질문이나 검증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이 가정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가정들에 대해 따져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근거로 그냥 생각을 굳힌다. 그리하여 이 가정들은 우리 사회 주류의 상식이 되어 민중을 세뇌시키고 마침내 지배해 버린다.
◎ “경제는 성장하고, 지역은 개발 없이 발전이 없다”라는 주류의 상식은 사실 경제학의 객관적 분석은 물론 검증된 결론도 아닌, 이데올로기적인 결론에 불과한 것이다.
◎ "개발․성장이 잘사는 길이다. 나가 우리 사회 주류의 상식이 된 역사 배경을 보자.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투자할 몰상한 장소를 찾고 있는 시간대에 대통령에 당선된 트루먼은 “후진국에 원조하여 개발․성장 시킨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치연설문에서 성장․발전․개발(develo pment)의 새로운 말이 만들어졌다. 이런 개발․성장은 밖에서 자본이 들어와 자연이 망가지고 전통 문화를 바꾸는 착취가 본질이 된 것이다. 착취의 포장지는 언제 어디서나 성장과 소득증대이고 내용물은 착취였다. 이 포장지로 재미 본 측은 결국 누구인가?
◎ 개발․성장의 바람몰이가 한창인 60년대 일본 노동자․농민의 안보투쟁에서 “잘 사는 것은 경제만이 아닌 정의․평화․민주․평등이 함께 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와 방어의 눈물이 범벅된 그 아우성에 대한 보수 정부의 대응 논리가 잘 사는 것은 GDP 크기가 해결한다. 하였다. 그러니까 아우성에 대한 방패요 진압봉이 소득배증론이었고, 이것은 이데올로기로서 성공하여 사회 주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 우리나라의 경우 5.16군사 쿠데타 개발독재는 농민․노동자를 성장의 큰 틀에 끼워놓은 채, 고도성장 정책을 강행했다. 권력 독점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국민의 정치 관심을 돌리고, 본심을 가리는 방패가 개발성장과 지역소득증대 아니었던가?
◎ 농민․노동자를 성장제일주의의 틀 속에 끼워놓고 마구 돌려버리면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이 약한 농민․노동자는 작아지고 천덕꾸러기가 된다. 주위를 보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불, 외환보유 세계 4위, GDP 세계12위, 이만하면 농민 서민이 성장의 덕을 볼만도 하건만 농어촌 학교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개발․성장 25년 동안 농촌에서 무려 5,262개 학교가 폐교, 앞으로 3년간 676개를 더 없앤단다. 그 빈집 페인트칠해 도시사람들 농촌체험장 만들고, 서울에는 국제학교, 귀족학교 설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거야 말로 모순의 극치요, 땅속의 뿌리는 캐내 버리고 꽃잎사귀에 영양주사 놓는꼴이다.
◎ 나는 얼마 전 열악한 조건에서도 삶의 질을 세계 제일로 가꾼 필란드에서 서민 보살피는 리 경제를 감동 있게 보았다. “개발․성장 앞으로” 진군나팔 불어대는 우리 현실을 비교하면서 이파리만의 무성함이 아닌 뿌리를 보살피는 국정철학을 애타게 그려 본다. 그리고 “성장=잘사는 것” 이라는 환상의 상식 잣대로 측량하는 한미 FTA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자꾸 궁금해진다.
◎ 결국 “성장이 잘 사는 것”이라는 환상적 상식에 빠지게 되면 도박(바다 이야기)이 나라 경제의 효자가 되고, 생산성․경쟁력 약한 농업은 불효로 몰린다. 비록 환상의 광기어린 상식에 포로가 된 서민대중이지만 그런 광기의 상식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를 꿰뚫어 보는 것이 이럴 때 일수록 중요하다.
◎ 이제 우리는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 주류의 상식에서 새로운 상식으로 대 변혁 없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와 있다. 우리 앞에 흐르는 위기의 강물은 정말로 깨달음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강(江)이다. 그 깨달음은 아픔이요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경제는 잘 산다(풍요로움)는 존재의 끝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관계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광식 칼럼리스트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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