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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성 교수의 인물로 본 현대<2>링컨의 가족생활

정기성 본지 칼럼리스트는 청소년과 교육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역사적 인물을 현대에 접목한 칼럼을 연재합니다.
정기성 칼럼리스트의 칼럼은 역사적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됐습니다.

   
 
 
링컨의 가족생활

에이브 링컨은 9살에 어머니를 여윈다. 그의 여동생은 그가 19세에 분만후유증으로 사망한다. 그의 부친이 세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뒤 아브라함의 일곱 식구가 한 작은 통나무집에 살아야 했다.
그는 어려서 호리호리하게 자라고 좀 멍청하게 보여 어린 소녀들에게 조롱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 자란 다음에 그는 익살을 떨거나 우스개 소리를 하여 그의 수줍음을 가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윈 링컨에게 새엄마는 훌륭하였다. 간디, 레닌, 루즈벨트 등이 편부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면, 특별한 자존심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고 하였다.

링컨은 사라 부시 존스턴 링컨이라는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링컨은 새 어머니에게 매우 귀염을 받았는데, 새 어머니 사라는 링컨을 잘 양육하였고, 링컨은 어머니 사라에게 후에 40에이커의 땅을 드릴 정도로 효성이 깊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문자해득 수준이었지만, 사라의 모성애는 링컨을 훌륭히 성장시켰고, 사라는 링컨을 지지하고, 확신에 차게 하여 주었다.

링컨의 생애에서 볼 때 그의 대통령 시절 그가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음을 보여 주었다. 어떤 자질은 타고 난 것이었지만 다른 능력의 대부분은 의지를 가지고 개발한 것이었다. 정직성, 성실성, 서민성,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 등은 어린 시절 교육의 덕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선택한 변호사 직업이 후에 최고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준비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신념과 사상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링컨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지휘하고, 동기를 부여하는데 탁월하였다는 점이다. 공직 생활 중 그는 탁월한 웅변가가 되었으며, 원고를 잘 작성하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그의 문장 표현에서 종종 나타난다.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보면 링컨이 얼마나 탁월한 연설가요, 작가요, 웅변가 인줄을 알게 된다.

링컨은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말솜씨에 재담을 섞어 말하는 소질을 지녔다. 그는 혁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변에 영향을 미쳤는데, 미국 대통령 중 특허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대통령이기도 하다.링컨의 목소리는 우렁차서 아주 멀리 까지 들렸다고 하는데, 앞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할 때 약 15,000명이 참석하여 들을 수 있었다니 놀랍다. 링컨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키가 커서 다른 사람들이 올려다보아야 했고,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게티즈버그 연설

게티즈버그 연설은 가장 간결한 원고로 유명하다. 미국 남북전쟁(1861-65)이 진행되고 있던 1863년 11월 19일 링컨은 게티즈버그 전몰자 국립묘지로 간다. 물론 그의 앞서 당대의 웅변가였던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이 두 시간 여를 먼저 연설하였다. 그러나 링컨은 266단어의 2분간의 연설을 하게 되었고 이 연설문이 게티즈버그 신문에 실리면서 미국사의 기념비적 텍스트가 된 세계적인 명연설문이 되었다.

링컨에 앞서 약 두 시간여, 13,607 단어의 연설을 한 에드워드 에버렛은 국무장관이었고, 상원의원, 하원의원, 하바드 대학교 총장을 지낸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그런데 왜 2시간의 연설문은 기억에서 잊어지고 단 2분의 연설이 명연설이 되었을까?

나는 미국 롱아일랜드의 루즈벨트 생가 박물관 매점에서 이 원본을 복사한 기념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 종이도 빛바랜 것에 손수 적어 놓은 간결한 연설문은 신선한 감동으로 마음을 찔렀던 것을 기억한다. 이 적은 단어의 연설이 미국을 바꾸어 놓았고, 민주주의의 이념의 바탕을 이루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정부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로 끝을 맺는 이 연설은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미국을 만들었고, 오늘날의 번영의 기초를 이룬 것이다.

이 연설문은 워싱턴 링컨 기념관 벽에 각인되어 있다. 링컨의 동산 한 부분은 반질반질한데, 그 이유는 사람들, 특히 흑인들이 와서 만지고 울고, 감동한다는 것이다.

링컨에 대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지만, 어떤 미국 신문에 광고되었던 내용은 링컨을 잘 정리 하고 있다.

광고내용

"당신이 의기소침하여 실망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였지요. 파산하였어요. 빚을 갚는데 15년이 걸렸고요. 결혼 했지만 행복하지 못했지요.

하원에 도전하여 두 번이나 낙선했지요. 상원에 도전하여 두 번 낙선했어요. 고전이 되어버린 연설을 했지요. 청중들은 무관심했어요. 신문에 의해 연일 공격당했고, 국가의 반이 그를 경멸하였어요. 이러한 모든 것에 불구하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툴고, 헝클러진 머리, 시무룩한 표정의 이 사람에게 감동을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아요. 그는 다만 에이 링컨(A. Lincoln)이라고 싸인한 사람이어요"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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