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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기성 교수 칼럼 = 링컨의 정직정기성 교수 칼럼

   
 
 
정기성 본지 칼럼리스트는 청소년과 교육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한 글을 연재합니다.
정기성 칼럼리스트의 칼럼은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벗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링컨의 정직

(1) 겸손한 지도자

Abraham Lincoln 제 16대 미국 대통령 이름이다.

1860년 3월 4일에 취임하였으니 한 세기 반 전의 일이다. 그러나 1865년 4월 15일 아침, 그 전날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 의해 포드 극장에서 피격되어 운명하게 된다. 이러한 극적인 일생은 미국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미국 달라를 보면 1달라 지폐에는 조지 워싱톤이 있고, 5달라 지폐에는 링컨이 있다. 그것은 미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순서라고 한다. 얼마나 링컨이 존경을 받고 있는가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스물세 살에 일리노이주 하원에 휘그당원으로 하였다가 낙선하였다. 이때 그는 선거 전단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젊고 또 내가 누군지 아는 분도 많지 못합니다. 나는 삶의 가장 미천한 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를 천거해 줄 만한 부유하거나 명망 있는 친척도 없습니다....뽑아 주신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커다란 호의를 베푸시는 셈이고 나는 그 호의에 보답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착하신 어른들께서 지혜롭게 판단하시어 나를 뒷전에 그냥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신다 하여도 상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실망을 겪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링컨이 사람들 앞에 얼마나 정직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에게 투표해 주시오 내가 아니면 안됩니다" 라고 하기보다는 "내게 투표 해주시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고마운 마음은 변치 않겠다"는 겸손한 마음이 배어 있다.

링컨은 큰 그릇으로 태어나 큰 그릇 역할을 훌륭히 하고 떠나간 사람이다. 사람이 시대를 만든다고 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는 경우도 많아서 값진 재능을 낭비하고 가는 사람도 허다하다. 그러나 링컨은 비범한 재능을 올바로 가꾸어 대성의 터전으로 나아갔다. 링컨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읽은 책 중 긴 구절을 암송하기도 했고, 월요일 아침 그 전날 교회당에서 들은 설교를 친구들을 모아놓고 되풀이하기도 했는데, 그 정확성이 놀라웠다고 한다. 연설하기도 좋아했고, 말솜씨가 구수 했다고 한다.

(2) 비범한 지도자

노예제도를 용인 하는 남부와 노예제도를 거부하는 북부와의 갈등과 긴장이 그에게 사명감을 부여 하였고, 그러한 상황 하에서 그는 거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만일 그가 북부 일리노이 출신이 아니고, 남부 버지니아 지도자였다면 그는 그 시대의 지도자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링컨에게서 이러한 흠결을 지적하기보다 그의 정직성과 지도력에 그의 위대함이 있음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그의 이 비범한 능력의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그의 정직성이라고 한다. 그는 그의 생활인의 삶 곳에서 일관되게 정직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점이 링컨을 링컨답게 만들었다. 정치에서 정직함이 무한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링컨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링컨에서 링컨다운 점을 발견해야 한다.

에이브 링컨은 정직한 지도자로 각인 되어 있다. 특이 한 것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정직한 점에서 존경을 받는 다는 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의 경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는 미국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데, 워싱턴이 정직했다는 것을 쓰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린이 조지 워싱턴은 어느 날 아버지가 아끼는 체리나무를 부러트렸다. 아버지가 돌아와 이것을 보자 누가 그랬느냐고 호통 쳤다. 그것을 본 하인이 도련님이 야단맞는 것이 안쓰러워 제가 그랬다고 하며 대신 맞을 것을 자청하자 아니라면서 조지는 내가 그랬다고 하고 종아리를 맞았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지도자의 정직한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어 미국 어린이들에게 일화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지도자들의 정직성에대하여 비교적 관대하다. 그리고 시험에만 합격하면 인격을 믿는 오류에 빠져있다. 미국 법과대학원(Law School)에 입학하려면 가장 중요한 서류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 명의 추천서인데, 그 추천의 핵심은 이 학생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느냐하는 것이다. 즉 인격을 믿을 만한가하는 것을 추천받는다. 사회의 지도층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3) 재기를 이루다

링컨은 수물 네 살에 베리라는 친구와 동업으로 점포를 낸다. 1833년 정월의 일이다. 1958년 링컨이 상원에 출마했을 때 상대방 스티븐 더글러스는 "링컨은 한때 술집을 경영했다"고 비난하였으나 링컨은 그렇지 않다고 강력히 부인 하였다. 술집이란 술을 마시는 곳을 의미하고, 술을 파는 곳은 술집이 아니고 상점인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허가 없이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때이므로 술집을 경영한 일이 없다는 링컨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었다. 동업자 베리는 곧잘 술 취하였으며, 곧 병들어 죽으면서 그때 돈으로 1,100 달라 라는 막대한 부채를 링컨에게 떠맡기고 타계하였다. 측량기사로 하루에 3 달라를 벌 수 있던 때였다. 링컨은 이것을 정직하게 갚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살고 있던 마을에 우편국이 없어져 우편 판매를 대행하게 되었다. 이때 오랜 기간 후 우편대금을 회수하려고 정부에서 사람이 왔을 때 그는 낡은 나무궤짝을 내어 놓고 열었는데, 셈하여 보니 찾아온 손님이 요구하는 금액과 똑같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그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정말 고지식하게도 정직한 것을 보여준다.

이후 1834년 이 젊은 청년 링컨은 차점으로 당선하여 25세에 일리노이주 의회에 들어간다. 이제 그는 꿈 많은 시골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이후 183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그해 8월 주 의회에서 최고 득점자로 재선의 영광을 누렸다.  이때 그는 <노예제도>가 정치적 쟁점이 되었으며, 77대 6표로 노예제도를 두둔하는 결의가 되었다. 그러나 링컨은 반대표를 던졌다. 링컨은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며 젊은 나이에 분명한 정치적 소신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도 분명한 입장을 가지게 되어 남북전쟁이라는 큰 전쟁 속에서도 그 근간을 잃지 않는 지도자의 태도가 있었다. 그래서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이라는 명연설이 확실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노예문제는 당시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남쪽 미시시피에서는 폭도들이 세 사람의 직업 도박사들을 목매달아 죽였으며, 일리노이주 엘튼이라는 도시의 언론인이었던 노예제도 반대자 일라이자 러브조이가 암살당하는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노예문제를 일리노이에서 정식으로 반대하면서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제 일리노이주에서 지조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이규웅 기자  aa5767@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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