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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태(卞榮泰)선생과 아령[아침을 열며]하남문화원 이석형부원장

   

 

 

 

 

백지와 흰 천은 색깔에 물들여지기 쉽고 한 번 물들여지면 그 색깔을 바꾸기가 어려워져 그 흰 천과 백지는 물들여진 그 색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다.  화가가 화폭에 담는 그림이 그렇고 옷의 색깔과 문양 또한 그러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어려서 머릿속과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영상(影像)을 잊지못해 머릿속에서 되뇌이게 되고, 인생길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어린시절의 배움과 체험, 깨달음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더 느끼게 한다.

우리 연배의 사람들이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6.25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된 1952년부터여서 그 때의 서울은 폐허였다.  그래도 배움의 즐거움 때문에 몇 십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을 내가 해야할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배고품도 즐겁게 참았다.

휴전협정반대 데모등을 하며 을지로와 종로거리를 행진, 시위를 하던 어수선했던 그 시절,잊을수 없는 하나의 선명한 채색(彩色)은 변영태(卞榮泰 1892-1969)선생이 준 것이었다.  당시 외무부장관(1951-55)이던 변영태 선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령을 할 것을 권유했다. 

아령은 시간에 구애없이 어느 곳에서나 혼자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몸의 각 부위 근육과 관절, 심폐기능 강화는 물론 몸의 유연성과 몸과 마음에 힘을 축적하게 돼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우수한 기초체력 운동이라면서 장관이 끝난후에도 신문에 인터뷰를 하며 몸소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가이며 학자인 변영태 선생은 학생시절부터 아령을 하기 시작, 출장을 갈 때도 가방에 아령을 넣고 다녔고, 일생동안 아령을 해 평소 별로 앓지도 않고 항상 심신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했으며, 환갑이 넘은 그 당시에도 광화문, 예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아령시범을 했고, 아령으로 다져진 근육과 건강한 몸매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아령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채색으로 남아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령을 곁에 두고 살고 있다.  중학교시절에는 지금처럼 깔끔하고 예쁜 아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장간에서 쇠를 녹여 양쪽을 둥그런 무쇠뭉치로 만든 아령으로 아침 저녁 집 뒷곁에서 손잡이가 반들반들해지도록 아령을 했고 아령끼리 부딪혀 아령의 목이 부러지기도 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집에서 뿐만 아니라 용두동 골목길, 구의동 한강변, 아차산, 잠실의 올림픽공원, 남한산성, 석천호수, 분당의 불곡산, 중앙공원, 탄천변을 걷거나 조깅을 할 때도 아령을 들고 다녔고 지금도 팔당강변과 검단산에 갈 때도 아령을 들고 다닌다.  그래서 유학가는 아들에게 아령을 들려보내기도 했고 보는 사람마다 작은 근육까지 발달시키며 온몸에 에너지를 축적하는 아령을 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변영태선생이 당시 아령을 적극 보급한 것은 6.25전쟁후 운동시설이 별로 없던 때여서 학생등 청소년들을 비롯한 국민의 체력저하를 염려한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한다.  또 건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이제 55년, 경제는 좋아졌으나 공부와 입시에 시달리는 청소년들과 일에 파묻혀 운동부족인 대다수의 청장년, 그리고 남녀노소에게 아령을 하자고 말하고 싶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몸과 마음과 건강을 가꾸는데 가장 적합한 아령을 하자고 권유하고 싶다.  아령을 하며 에너지를 축적, 힘차게 살아가자고 하고 싶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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