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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 成 國 교수(경민대 도서관장ㆍ법학박사)
고래의 미풍양속의 요체는 고려 말부터 계수되기 시작하여 조선 중엽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정착된 고대 중국의 종법(宗法)에 기초한 가족법규범의 핵심원리 곧 제사상속 내지 가계계승에 있어서의 남계혈연계속주의와 동성동본불혼(同姓同本不婚)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원리는 20세기를 맞이해서도 1912년 조선민사령 제11조에 의하여 계속 유지되었으며, 1945년 해방 이후의 미군정 및 제헌헌법상의 과도적인 조치에 의해서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2005년 3월 31일 민법 개정(시행 2008년 1월 1일)은 이처럼 강한 생명력을 유지해 오던 가족법(민법 제4편 친족법, 제5편 상속법)의 두 기축의 소멸을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상 호주제가 무엇인가를 명시적으로 개념정의하고 있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았다.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헌법재판소 결정문(2001년 헌가9)에는 호주제를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유지하고, 이러한 가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라고 집약 정리할 수 있고, 이를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캇로서, “단순히 집안의 대표자를 정하여 이를 호주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호주를 기준으로 호적을 편제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정의되고 있다.
법률상 호주개념이 삭제됨에 따라 이를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하고 있던 법률상의 가제도(家制度)도 폐지되었다. 아울러 호주를 기준으로 하여 가별로 편제하게 되어 있는 현행 호적제도도 변경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법적 성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삼국시대 이래 호(戶)를 단위로 하여 직.간접적으로 인구의 동태를 파악하고, 그를 통하여 개인의 신분관계의 변동을 공시하며, 국적부(國籍簿)로서 기능을 담당해 온 호적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호주제도의 폐지는 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라는 호주의 지위와 호주승계제도를 통하여 담보되어 온 가계계승제도 및 그 속에 내포되어 있었던 제사(祭祀)상속제도의 폐지를 의미한다.
민법은 성제도와 관련하여, 비록 일제하의 창씨개명조치에 의하여 굴절된 때도 있었지만, 부성추종주의(父姓追從主義)와 성불변(姓不變)의 원칙을 유지해 왔고, 그 연원은 호주제도보다 깊다.
2003년 의원입법형식으로 제안된 민법개정안에서는, 자(子)의 성(姓)과 본(本)은 부모의 협의에 의하여 정하고,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부 또는 모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정하며, 형제자매는 동일한 성과 본을 따르고, 자의 복리를 위해서는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게 하여, 성과 본에 관하여 고수해 왔던 원칙의 폐지가 제의되기도 하였다.
성(姓)의 선택 및 변경 가능성이 인정됨에 따라 성은 부계혈연의 표지라는 관념은 그만큼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5년은 한국가족법사에 있어 커다란 전환기에 해당한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단순한 가족규범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성격이 강하며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었던 종법에 기초한 남계혈연계속주의와 족외혼주의(族外婚主義)가 실제와 습속에서까지는 모르나 법제상으로는 사라지게 되었다.
호주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야 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를 규율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족사에서 1960년대 이전, 효사상이 잘 실천되어 세계에서 노인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는 사회였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장경제제도가
도입되면서 이 제도가 붕괴되고, 노령인구가 늘면서 노인복지는 사회문제로 등장했는데 호주제폐지로 인하여 어떤 가족형태가 형성될지 예측이 쉽지
않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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