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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망가져야 알게 될까요?[칼럼] 아침을 열며
   

 

 

 

 

 

여느 때 같으면 한참 새소리 들리는데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여 뒷산에 나가 보니 아람드리 도토리나무가 넘어지고 있다. 아마도 40년 넘은 세월 우리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주던 그 나무들이 몇 분 사이에 다름 아닌 그 사람들의 손에 땔감으로 베어지고만 것이다. 땔감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요즘이지만 참나무는 화력이 좋기 때문에 생나무를 벤다는 것이다.

나는 넘어진 참나무 앞에서 인간들의 오만과 이기심과 잔인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 오만이 인간의 자연에 대환 오만이건. 사람들과의 이기심과 잔인성이건 그것은 생명 경시와 애정이 결핍될 때 일상화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에 다양한 생물 특히 숲들의 품에서 진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야생의 자연 숲에 애정을 버리면 인간 자신을 버리는 일에 익숙해져가는 인간으로 진화돼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한 기간은 불과 백만년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나무는-숲은 1억 오천만년 동안 생명의 터밭을 지켜오고 있지 않았던가. 그 긴 세월 인간의 출현-마을의 터전을 애타게 기다린 것 말고도 그 무언가 다른 중요한 일들을 해오지 않았겠는가? 생명의 원소 그 산소는 누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공짜로 바치고 있는가? 앙칼진 사람들의 심성을 누그러뜨려주는 새소리, 바람소리는 누가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쓰러진 도토리나무 앞에서 자연의 분노와 나무의 눈물의 본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생태적 재앙이 보이기도 했다. 재앙은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오만과 수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모든 재앙의 공포는 항상성으로 우리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다.

천성산을 지켜내려고 목숨을 걸고 있는 지율스님의 피골이 상접한 그리고 거룩한 얼굴이 떠올랐다. 스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온 생명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시들어가는 뭇 생명들이 스님의 눈물을 받아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 깨달음을 얻게 될까?

땔감으로 쓰러진 도토리나무 - 임진왜란때 선조 임금이 피난길에 도토리로 묵을 쑤어 먹고 국난을 버티어냈다는 도토리 나무. 한양으로 돌아온 뒤 임금이 도토리 묵을 다시 찾게됨에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진 나무라하여 상수리나무. 어려운 중에 백성과 임금을 지켜낸 나무들중에 나무라하여 참나무가 된 것이다. 온갖 공해에 찌든 지금은 인체에 위해한 중금속을 해독시켜주는 영약 도토리를 선사한 그 나무를 사람들은 홀대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현상을 걱정하고 해결책을 서두르고 있다. 가진 자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고, 국가경쟁력을 높여 경제 성장력을 높이려면 초등학교 일학년부터 영어공부 시키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경쟁력이 높아질까? 토종 모국어를 제쳐두고 유치원 아이들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필리핀은 국가 경쟁력이 얼마나 높을까?

생명을 경시하고 자연을 가치없이 홀대하는 국민의식, 지도자들의 개발정책이 양극화의 주범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 국가 경쟁력도 양극화도 해결할 수 없다는 교훈과 사례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생명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사람들의 수많은 꾀가 오히려 재앙으로 바뀌게 된다는 교훈말이다. 산을 허물고 나무를 베어 길 넓힌것을 공적으로 자랑하는 지방자치장보다, 시민의 삶의질을 높이기위해 하천을 살려내고 나무를 가꾸는 문화운동도 챙겨보는 지도자가 많아질 때 국가경쟁력도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기초도 더욱 튼튼해진다는 교훈을 얼마나 망가져야 알게 될까요?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제끼면 사람까지 베어 넘기게 된다는 천지이치를 얼마나 기다려야 깨닫게 될까? 얼마나 더 아파봐야 후회하게 될까?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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