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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아침을 열며] 조성국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30여 년에 걸쳐 경제개발에 치중하여 사회ㆍ경제적 대변혁을 거쳐 오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우리민족에게 천형(天刑)처럼 여기던 보릿고개를 넘었으나 부작용도 뒤따랐다. 동서양의 윤리가 서로 만나 만든 윤리의 혼재(混在)와 공생(共生)이라는 불편한 관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유교사상인 충ㆍ효ㆍ예ㆍ경 등의 종적(縱的) 바탕 위에 기독교적 배경인 평등ㆍ합리ㆍ민주 등의 횡적(橫的) 사상이 오버랩(Over lap) 되면서 필연적인 갈등이 생겨났다. 이것은 ‘풍요 속의 빈곤’과 ‘성장 속의 소외’란 증상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가정교육을 약화시키고, 학교교육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교육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제임스 콜먼(James Coleman)은 “가장 강력한 교육기관은 정부의 손에 있지 않으며, 교육의 성패는 학교보다 가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역설했다. 건강한 가정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안정된 반석 위에서 인간화와 전인교육을 무리 없이 실천에 옳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일차적 교육자인 부모가 자식들에게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으면 좋은 교육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X세대니 뭐니 하면서 부모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않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가족간의 대화는 거의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모녀간의 주고받는 말은 친구지간에나 쓸법한 반말 일색이다. 더구나 신세대 부부의 젊은 아내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서 마치 소곱친구 대하듯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이 정말 우리네 보통 가정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부모의 권위가 바로 서며, 가정교육인들 제대로 되겠는가.

권위란 반드시 다 옳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윗세대라고 해서 모두가 다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이를 헛먹는 것만은 아니기에, 인간세상에서는 선배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경륜을 귀담아 들으려는 당연한 미덕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패기를 가지고 맹렬히 뛰면서도, 앞 세대의 지혜와 원려(遠慮)를 겸손하게 받아 배움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대적인 연속성과 상호보완이 깨어질 때, 그 사회는 불균형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곧 가정의 문제이며 가정의 문제는 바로 아버지(남편)의 문제라는 인식하에 1995년 10월 두란노서원에서 아버지학교를 개설하였다고 한다.

‘두란노 아버지학교’ 개설의 목적은 첫째, 좋은 아버지 상을 추구하며, 둘째,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셋째, 잘못 행사되고 있는 아버지의 권위를 바로잡고, 넷째, 아버지 부재의 가정에 아버지를 되돌려 보내자는 것이다.

이 학교는 개설된 이래 현재까지 국내외 총 120개 지역에서 650회 진행, 45,000여명의 아버지가 수료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남편)가 약해질 때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무너지므로 가정의 회복을 위해, 아버지들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제는 아버지들에게 건전한 아버지상과 남성상을 세워 주어야 한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이념이 잘 실천되어 사회가 변화되고, 국가와 민족이 더욱 발전되기를 바란다.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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