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년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날, 광주시 초월읍 신월3리엔 큰 마을잔치가 열렸다.
지금부터 꼭 100년전인 1906년(경미년) 12월 25일, 세상과의 인연을 시작했던 정덕순여사의 백순잔치가 열린 것.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최고 어르신인 정덕순여사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자리에 서슴없이 시간을 할애했다.
![]() |
||
이 자리에 감회의 눈물과 함께 최고의 기쁨을 누린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한 평생 정덕순여사와 함께 했던 장남 장구환(74)씨와 맏며느리 이인순(75)씨가 그들.
장구환씨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곁에 있어 준 것 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며 "늘 건강하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시어머니와 고향이 같은 맏 며느리 이인순씨도 감회는 남 다르다.
경기도 용인시 자연농원 인근, 각각의 친정이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광주에서 또다른, 그러나 같은 제2의 고향생활을 해 오고 있다.
70세를 훌쩍넘은 아들과 며느리, 마을주민들은 칠순이 넘은 이들이 어머니를 향한 효도의 생활은 마을의 자랑이라 입을 모은다.
정덕순여사는 용인시 용인면에서 태어나 광주시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17세 나이로 결혼하던 1923년.
80년을 광주시 초월읍에서 보낸 정덕순여사는 지금도 거동이 활발할 정도로 건강이 좋다.
아들과 며느리가 밭에나가 김을 멜라 치면 정덕순여사는 집에서 고추를 널며 집안일을 하고, 비가 올라 치면 집마당을 정리하며 일을 거든다.
매일 바삐 몸을 움직이는 운동으로 건강을 다진 정덕순여사는 아들이 직접재배한 채소로 밑반찬을 만들어 드신다.
손수 담근 간장이며 된장 또한 일품인데다 이것으로 만든 찌게는 동네 사람들도 인정하는 최고의 맛을 우러낸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으신 정덕순여사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자택이 마을에서 5백m정도 떨어져 외진곳에 홀로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행사때마다 따로 음식을 챙겨 가져오는 주민들이 있어 행복하다.
마을 주민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정덕순여사를 찾아 덕담을 나눈다.
이럴때면 다소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정덕순여사의 한마디한마디는 곧 살이되고 양식이 된다.
이런 마을의 최고 어르신의 100회 생신을 마을주민들이 그냥 지나칠리 없다.
장기전 이장과 장기화 새마을지도자, 박란자 새마을부녀회장 등 마을일꾼들이 팔을 걷었다.
백수연 한참전부터 준비된 이들의 정성은 외부로 알려지게됐고 이길수 새마을운동광주시지회장과 진영숙 초월읍부녀회장, 이명희 국악회장, 조억동 광주시의회의원 등이 흔쾌히 동참하고 나섰다.
12월 25일, 이렇게 막이 오른 백수연은 국악 축가에 이어 마을 주민들의 큰절 등 구구절절이 감동히 흐르는 시간으로 엮어졌다.
이렇게 준비된 백수연에서 정덕순여사는 연신 "뭘 이렇게까지"라며 소녀(?)의 수줍음을 보였다.
장기전 이장은 "무갑산 줄기에서 규칙적인 생활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사심없이 한평생을 살아오신 정덕순여사님은 분명 본받아야 할 우리들의 어르신"이라고 말했다.
장길환씨는 "산자수려한 마을을 지키며 효도와 화목을 몸소 보여준 정덕순여사는 실천하는 교육자"라며 "이 분을 위해 새마을운동광주시지회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줘 더욱 뜻깊은 백수연이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덕순여사는 슬하에 2남2녀를 두셨고 장기소(52)씨를 비롯해 장손자 4명과 장석완(22)씨를 비롯한 증손자 10명과 함께하고
있다.
이규웅 기자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